위기에 몰린 기득권자 사무엘
신앙적 관점에서 사무엘은 훌륭한 제사장 혹은 경건한 예언자로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른 관점으로 읽힙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정치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의 마지막 지도자로서 예언자로서의 종교적 권위와 사사로서의 사법적 권력 그리고 군사 지휘권까지 가진 그야말로 신이자 왕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사로 키워져서 엘리트 코스로 평생 권력을 누리다가 그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에게 승계를 하려는데 아들들이 희대의 난봉꾼들이라 백성들은 강력히 항의하기 시작합니다. 세습 정치의 꿈이 사라지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생애 첫 시련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그런데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격화된 가운데 백성들은 이에 더 나아가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게 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2. 허수아비 왕을 통한 간접 통치 고안
사무엘의 해법은 교묘하고 기발했습니다. 겉으로는 백성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척하면서 실질적 권력은 여전히 자신이 쥐고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왕정제를 도입하되 왕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인물로 세우게 됩니다. 현대 정치학 용어로 치면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실세 총리가 되는 전략을 택한 겁니다.
사울은 만만한 왕을 뽑기 위해 적절한 후보 선택에 나섭니다. 백성들은 강력한 왕을 요구하였고 사무엘은 자신이 조종 가능한 왕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요구에 적절한 인물은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3. 사울 왕을 선택한 이유
사무엘은 집안 세력은 크지 않되 백성들 보기에 그럴듯한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백성의 입장에서 좋은 왕은 키가 크고 잘생기고 겉보기에는 위엄이 있어 보이는 건강한 왕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시각적 만족도가 높아야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암나귀를 잃어버리고 찾아 나서게 한 것부터, 그로 인해 사울의 직간접 면접을 보게 한 것 등은 현대 서사에도 꽤 익숙한 장면들이니까요.
그렇게 종교적 포장으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줍니다. 농사를 짓던 사울은 졸지에 왕이 되었고 사사건건 사무엘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무엘은 종교적 권위는 공고했고요.
4. 현실적 딜레마
그러나 사울이 왕이 된 순간 왕관의 위력은 꽤 컸습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사무엘의 허락을 받았지만 점차 그도 주도권을 잡아 가게 됩니다. 전쟁통에 군사적 지휘관으로 즉각적인 행동도 필요했고 종교적 의례 절차도 주도적으로 해야 할 상황에서 나름 적절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사울의 자립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해놓고 늦게 나타나고 사울이 주관한 것을 꼬투리로 꼬락서니를 제대로 부리게 됩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세력을 데리고 자기 근거지로 돌아갔고 사울에게 남은 것은 아들과 가족 세력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울은 왕으로서 인정을 받았고 사무엘은 다른 왕을 물색하게 됩니다.
5. 사무엘의 다윗왕 프로젝트
사울이 자기가 왕이라며 독립적인 모습을 보인 가운데 사무엘은 차기 왕을 물색합니다. 그가 바로 다윗왕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사무엘은 사울이 완전히 물러나기 전부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차기 주자 키우기 전략에 돌입했다는 것이죠. 다윗은 사울보다 더 이상적인 후보였습니다. 사울보다 훨씬 어렸고 집안의 막내 아들로 목동이었으니 지위도 낮았고 그러다 보니 사무엘을 정신적 지주로 모시기에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사무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5. 백성만 피해자
결과적으로 백성들은 왕을 요구했으나 기득권자 사무엘은 괘씸하게 생각하고 허우대만 멀쩡한 만만한 농부를 왕으로 세웠으나 자기 말을 안 들어 이번에는 더 어린 목동을 차기 후계자로 세워 차근차근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합니다. 사울 입장에서는 사무엘과 다윗이란 악몽 속에서 미쳐 날뛰며 광기로 인해 다윗을 잡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사무엘은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보진 못하고 죽었지만 사울의 폭정을 방관하였습니다. 마치 감히 신을 무시하고 인간 왕을 세우려해? 샘통이다 이런 것처럼 보입니다.
5. 역사는 반복된다
사무엘의 정치적 야망과 사울의 비극은 3천 년 전의 일이지만 그것이 주는 교훈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권력자들의 권력 유지 시도, 종교적 권위의 정치적 남용, 겉모습만 바뀌는 가짜 개혁 등 한국 정치도 뿌리 깊은 구태 기득권자들이 대를 이어 판을 치고 있으니까요. 현재도 많은 종교인들이 신의 뜻이라면서 특정 당의 정치인을 지지하는 등 수많은 개입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 같은 왕을 만들지 않으려면 구태 기득권 청산은 매우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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