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스카 시대 이후 천황보다 실세로 자리 잡다 을사년에 참변을 당한 소가 씨 일족 이야기가 흥미로워 다뤄 보았습니다. 한국에만 을사년에 사건이 많은 줄 알았더니 한국보다 먼저 을사의 변이 있었습니다.
1. 일본의 강력한 호족 가문 소가 씨 집안에 관하여
고대 일본 아스카 시대에 황실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했던 강력한 호족 가문 소가 씨가 어떻게 그런 전횡을 하게 되었는지 배경이 궁금해졌습니다. 소가 씨는 야마토 지역, 특히 현재의 나라현에 속하는 아스카 지역 일대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토지에서 나오는 막대한 생산물은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자 정치적 영향력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천황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직책 오오미를 대대로 맡으면서 국가의 경제력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이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종교 권력을 장악하며 완전한 실세로 자리 잡게 되는데요. 종교의 위력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불교를 장악한 소가 씨 집안 그리고 불교란 종교의 위력과 내력에 대해선 아래 포스팅이 도움이 될 테니 꼭 읽어 보시고요.
🌟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 그리고 물에서 시작된 종교 이야기
2. 소가 씨가 백제인이라는 설
소가 씨가 백제인이라는 설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유력하게 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게 문명을 전파한 한반도인을 도래인이라고 하였는데요. 이들은 선진적인 농업 기술과 제철, 직조 기술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가 씨는 이러한 도래인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기술력을 활용하여 경제력을 증대시켰습니다.
특히 소가 씨는 백제 등 한반도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적극적으로 주도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이득을 보았고요. 6세기 중엽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소가 씨는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반대파인 모노노베 씨와 대립하여 불교 수용을 관철시켰고 불교를 통해 이들의 권위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소가 씨는 종교적, 정치적 우위를 점하며 많은 사찰을 건립하고 그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소가 씨의 혈통이 궁금하지 않나요? 왜 소가 씨만 유독 백제와 밀접한 걸까요? 소가 씨는 처음부터 백제계 도래인 씨족이란 설은 매우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 가설을 지지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소가 씨는 순수 토착 민족이 아닌 백제계로 보는 게 유력해 보입니다.
소가 씨의 시조로 여겨지는 소가노 마치와 백제 기록에 등장하는 목협만치를 동일 인물로 보거나 적어도 강한 혈연적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목협만치는 백제 사비 시대 초기(5세기)에 일본에 파견되어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친 인물입니다. 소가 씨 가계 이름에서 한자나 고마 와 같이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이름들이 보이는 점도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밖에 정황은 무수히 많아 찾아 보면 나올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것은 소가 씨는 5세기경에 갑자기 일본 정치 무대에 등장하여 6세기부터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것과, 갑자기 백제 정계에서 목 씨 가문이 사라진 점을 보면 목 씨 가문 전체가 일본으로 이주하고 소가 씨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2.1. 백제 목씨의 위상과 역할
백제 목씨는 당시 사비 시대 초기에 국정을 총괄하는 좌평을 배출하는 등 백제의 8대 귀족 중 하나로 매우 유력한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외교와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어느 순간 목 씨가 백제에서 사라지고 일본에서 갑자기 소가 씨가 득세했다는 게 너무 흥미롭지 않나요?
게다가 목협 만치와 소가노 마치의 이름이 유사하다는 점이 강력한 연결 고리로 작용합니다. 목 씨에서 소 씨로의 변형도 흥미롭습니다.
나무 목木씨가 소생할 소蘇로 바뀐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소가씨의 근거지에 백제천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도 집성촌 느낌을 줍니다. 소생할 소도 풀과 물고기와 나무목이 들어가 있는데 목 씨의 흔적을 소에 담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3. 을사의 변으로 멸망한 소가 씨
그러나 쇼토쿠 태자 섭정 전에도 전횡을 일삼던 소가 씨는 한 백 년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더니만 개혁의 붐이 일어나면서 몰살하게 됩니다. 다른 유력 호족 및 천황 가문은 소가 씨의 전횡에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내부 안정과 왕권 강화를 위해 처단 1호가 됩니다. 여전히 가문의 파워는 셌지만 645년 음력 6월 나카노오에 황자와 그의 조력자 나카토미노 가마타리를 중심으로 봉기하여 소가 씨의 핵심 인물인 소가노 이루카를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을 을사의 변이라고 부릅니다. 이루카의 죽음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 소가도 에미시도 자결하면서 약 1세기 동안 일본 정치를 주무르던 소가 씨의 전성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4. 소가 씨의 후손
645년 이후 완전히 몰락한 소가 씨는 일본에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혈통이 씨가 마른 것은 아니겠죠. 소가 씨의 혈통은 다른 성씨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후예로는 이시카와 씨입니다. 다이카 개신으로 권력을 잃은 후 이들은 성씨를 바꾸거나 분가하여 새로운 성 씨를 사용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소가 씨의 분가였던 이시카와 씨인데 이들은 이후에도 귀족 가문으로 존속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본향인 백제로 역이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할 것 같네요. 고대 국가 백제의 성립과 발전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 포스팅 참조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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