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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비극의 아이콘 나탈리 우드의 라이프 스토리

by roo9 2021. 4. 6.

 

헐리우드를 대표한 배우 나탈리 우드의 생애는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습니다. 러시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아역 배우로 출발한 그녀는 10대에 이미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며 스타덤에 올랐고, 사랑과 스캔들, 공백과 복귀, 그리고 의문사로 이어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1. 나탈리 우드의 출생과 아역 시절

1938년 7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 카탈리나 섬에서 태어난 나탈리 우드는 러시아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영화계에 데뷔하였고, 7살이 되던 1946년, 이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40년대 어린 시절의 나탈리 우드


2. 이유 없는 반항, 이유 있는 도약

1955년, 17세의 나탈리 우드는 제임스 딘과 함께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으로 단숨에 주연 배우의 반열에 오르며,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청춘영화가 아니라, 나탈리 우드라는 존재가 가진 도시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헐리우드 전면에 부각시킨 계기였습니다.

 

1950년대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 

3. 결혼과 재혼, 그리고 염문

1957년, 나탈리 우드는 18세라는 나이에 8살 연상의 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1962년에 끝났지만, 그녀는 1972년에 다시 로버트 와그너와 재혼하게 됩니다. 그 사이, 엘비스 프레슬리, 니키 힐튼 등과의 로맨스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4. 공백과 재기, 그리고 성공

1960년대 후반, 나탈리 우드는 개인적 문제와 심리적 고통으로 영화계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니시리즈에 출연하며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하는 등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한 1966년의 사건은 그녀의 불안정한 내면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나탈리 욷가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하던 모습

 


5. 마지막 여정과 의문사

1981년, 나탈리 우드는 남편 로버트 와그너, 배우 크리스토퍼 월켄과 함께 요트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 도중 벌어진 말다툼,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익사체로 발견됩니다. 법적으로는 사고사로 분류되었으나, 몸에 남은 멍 자국과 얼굴의 상처는 단순한 익사로 보기 어렵다는 의문을 남겼습니다. 2018년, 로버트 와그너는 공식적으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여전히 생존 중인 그는 헐리우드의 가장 바람기 많은 남성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6. 스타일과 미의 상징, 나탈리 우드

짧은 앞머리 '마이크로 뱅'의 원조로 알려진 나탈리 우드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귀여운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그녀의 외모는 배우 박시연이나 김수미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며, 오드리 헵번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적 미인의 전형이었습니다.


마무리: 나탈리 우드, 영원한 헐리우드의 미스터리

나탈리 우드는 단순한 스타가 아니었습니다. 시대의 스타일을 이끌었고, 헐리우드의 영광과 추락을 모두 경험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삶과 죽음은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서 영화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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