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흑인과 백인 사이의 관계와 인종과 인종 차별의 역사는 음악사와도 관련이 깊다. 미국 음악의 역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쓰고, 제작하고, 재창조하는 대중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노예 흑인들이 만든 음악 스타일과 스토리
백인 아버지와 흑인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한국으로 따지면 일종의 서자로, 비교적 자유롭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와 재력과 재능을 고스란히 발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음악을 통해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켰다. 초기 작품들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핍박의 일상에 혼을 실어 부른 영적인, soul로 시작해서 블루스, 가스펠, 재즈, 리듬 앤 블루스, 힙합 등으로 진화하였다.
유럽의 음악을 차용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아프리칸 미국인
이러한 진화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적 경험에 대한 비유를 통해 미국, 유럽, 아프리카 문화의 혼합 혹은 합성의 결과로 간주할 수 있다. 아프리칸 미국인들은 유럽의 음악 형태를 차용하여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니까 미국 배추로 한국식 김치를 담그려고 했고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탄생한 거다.
표면적이지만, 노예제가 끝날 무렵,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목화 따는 밭일 대신 생계를 위하여 음악을 도구화하려했고 각국에서 몰려온 다문화 체제의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리하여 해방 후 그들의 음악은 민속 음악을 초월하여 훨씬 더 대중적으로 진화했다. 여기서 대중적이라 함은 유럽에서 건너온 그들의 공통된 취향에 부합된 것을 의미한다.
막강해진 흑인 음악
시간이 흘러, 미국은 아직까지도 흑백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로 떠들썩하지만, 법적 규제는 완전히 평등해진 무렵 흑인 음악이 상위 랭크된 확률이 30% 안팎이던 것이 2000년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절 반 이상이 될 정도로 흑인 음악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래그타임부터 힙합까지
다시 정리하면 흑인들이 생계를 위해 백인 취향의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에서 현재는 흑인 주도의 음악으로 대중을 선도 혹은 취향 저격까지 해주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흑인 음악이 이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젤리 롤 마틴과 스콧 조플린을 필두로 한 래그타임 시대부터 듀크 엘링턴과 루이 암스트롱의 용호상박, 엘라 피츠제럴드와 빌리 홀리데이의 매력적인 보이스, 레이 찰스 등의 비밥, 등을 비롯해서 흑인 뮤지스트들은 20세기 전반 미국의 대중음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야기가 이렇게 끝난다면 너무 아름답다. 서자 흑인들이 전통 계승하려다 대중 취향의 음악 만들고 박해를 극복하고 미국 음악 시장을 선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들리니까 말이다.
진정한 흑백 음악 시장 갈등은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결과론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는 것은 음악뿐만이 아닌 미국 모든 것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노예 해방 후가 아닌 세계 2차 대전 이후부터 발생한다. 미국 영화 및 음반 시장이 발달하면서, 그러니까 산업 사회가 도래하면서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노골적으로 음악 시장을 선점 및 갈취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가 유튜브를 통해서 듣는 커버 음악은 지금은 그럴듯한 카피 음악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주 잔인한 현실이 녹아 있었다. 커버 음악은 흑인 가수가 만든 음악을 백인 가수가 부른 것처럼 모방은 예사고, 소위 커버친 음악을 일컫는다.
흑인이 부르고 백인이 퍼포먼스를 하던 시절
1950년대 미국에서 이런 행태가 만연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흑인들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화를 낼 노릇인 건 맞다. 물론 당시에는 흑인들이 공동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했고 버스도 같이 탈 수 없을 정도로 흑인 차별이 심각했으니, 주 소비계층이 백인들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흑인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전면에 등장해서? 당시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흑인 인종 차별을 떠나 기획사 측에서는 비주얼 좋은 백인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고 해야 레코드가 더 많이 팔릴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당시 유명한 커버 가수로는 펫 분이나 깁스가 대표적이었다. 심지어 비틀스나 롤링 스톤스조차 흑인 음악을 커버하였고 미국 청소년들은 알았는지 몰랐는지 원조를 찾아서 놀이를 한 것인지 흑인 음악에 심취했다. 그러니까 당대 최고의 밴드 그룹들이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을 차용했다고 하니 백인 청소년들은 흑인 원조들이 부른 리듬 앤 블루스는 어떤 걸까? 하는 보물 찾기 놀이를 해야했다고 봐야 하려나. 그러니까 얘들이 잃어버린 진짜를 찾아서 흑인 원석을 찾아낸 거다.
1960년대 십대들의 음악 취향이 판을 바꾸다
당시 10대 청소년들은 부모들이 십 대 였을 때보다 더 부유했고 자유로웠으며 대중 시장에서 확고한 소비 계층으로 자리 잡아갔다. 때문에 이들의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리고 이들은 1960년대 대학에 들어가 난리 부르스를 치게 된다. 히피에 난잡에 흑인 뮤직을 추앙하고, 그것이 백인 부모들과 백인 경제 사회에 대한 반항의 일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메탈도 판치고, 흑인 아티스트 등장은 물론 멀리 자메이카산 밥 말리까지 잘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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