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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 media/미디어영상학

텔레비전 편성사

by roo9 2013. 6. 21.

한국 텔레비전 편성사에 관해 알아보자

 

HLKZ-TV방송(1956~1960)

 

195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TV전파가 발사됐다. 속칭 종로 방송국으로 불린 HLKZ-TV였다. 그러나 점차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았고 화재로 시설이 전소되어 주한미군 방송에 의존하다가 결국 1961년 문을 닫는다. 최초 TV방송국인 KORCAD의 개국 편성은 매일 저녁 8시에서 10시까지 2시간 방송으로 출발해 점차 시간을 확대했고 광고를 포함한 모든 방송이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

 

 

 

KORCAD의 편성 특성

 

미국식 상업 방송의 편성을 답습했다. 법적 규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편성이 이루어졌다. 프로그램 수급에 자체제작보다 외부의존도가 월등히 높았다. 교육 프로그램을 대량 편성하였다. 교양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TV매체가 갖는 신기성을 주지시키고자 했다. 수용자 대상은 거의 상류층에 초점을 맞추었다. 편성 정책이 프로그램 수급에 따라 유동적이었고 방송 프로그램도 자체제작보다 기성품이나 외부 조달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국영방송기(1961~1964)

 

1961년 KBS-TV가 개국하고 1964년 TBC-TV가 개국하기 이전까지의 기간이다. KBS는 유일한 텔레비전 방송국이자 국영방송이었다. 초기에는 교양과 교육 프로그램이 많았으나 TBC개국을 앞두고 오락적인 성향으로 변모해갔다. KBS는 라디오-텔레비전 공용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는 어느 나라에나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러나 점차 제작비 압력으로 오락.연예 프로그램이 침체되자 시청자의 불만의 소리가 높아졌고 정부는 텔레비전 운영 정상화 방안을 모색한다. 1963년부터는 월 100원의 시청료를 징수하고 광고방송을 실시하게 된다.

 

 

국민영방송기(1964~1980)

 

TBC개국에 이어 1969년 MBC등 민영방송들이 개국하였다.

 

 

TBC개국 초 편성

 

TBC개국 이후 KBS와 양방송사 간에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다. KBS는 제도상으로 국영방송이지만 수입원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었기에광고수입을 위해 TBC와 편성경쟁을 벌였다. 동일한 유형의 프로그램을 동일한 시간대에 편성하는 실력편성이 편성전략으로 등장하여 뉴스와 쇼, 드라마 등이 주요 경쟁대상 프로그램이 되었다.

 

상업방송인 TBC는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여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외화 및 해외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대중성을 제고하고 오락성과 공익성의 조화를 고려하였다. 특히 드라마는 사극 제작에 역점을 두었고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여 주말편성에 오락성을 강화하였다.

 

 

 

아침방송 개시

 

한국전력이 절전에서 소비권장으로 정책을 전환함에 따라 1967년 TBC가 서울과 부산에서 아침방송을 개시했고 이어 KBS도 시작했다. 6월26일부터는 다시 전력사정이 악화되어 밤 10시 이후의 텔레비전 방송, 11월 9일부터는 아침과 낮 방송이 중단되었다.

 

 

MBC개국 초 편성

 

 

1969년 MBC가 개국했다. KBS는 광고방송을 모두 폐지하고 일일연속국 <신부1년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일연속극 시대를 열었다. 또한 국영방송에 충실하겠다며 오락은 줄이고 보도와 교양은 주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MBC는 당초 교육방송을 중심으로 출발했으나 1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종합편성을 단행 TBC와 맞대응. MBC개국 초 방침은 재래식 편성방식에서의 탈피. 생활시간 및 습성과의 일치. 높은 시청률과 높은 프로그램 판매를 동일하게 고려. 대상 프로그램 개발에서 시청층을 명확히 이해. 사회교양 프로그램 일정 수준 유지. 해설과 속보성을 동시에 갖춘 보도 프로그램의 제작. 오후 7시~9시는 주부 중심. 9시 이후는 남성 중심의 시간대로 구분 하는등 단계별로 방송 시간을 확대하기도....

 

 

 

경쟁기의 편성

 

1970년 KBS, TBC, MBC 3대 TV방송사 간의 경쟁기에 들어서면서 편성에도 큰 변화가 시작된다. 경쟁적 편성 경향. 8시 프라임 타임에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을 엇갈리게 배열. 오락물의 주축이던 주간드라마의 시츄에이션화. 주간드라마의 약화에 따른 버라이어티쇼 보강. 아침 방송은 와이드 모닝쇼 외에는 인기 프로그램의 재방송. 외화도 프라임타임 프로그램이 전제. 사회교양 프로그램의 개발 저조 등이다. 일일연속극 붐으로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질적 저하 비판을 받게 되자 정부의 통제가 이어진다. 문화공보부 장관은 1971년 6월 16일 프로그램의 저속성을 비난하고 자숙을 요청하는 담화문을 발표한다.

 

 

 

 

방송법 개정과 편성변화

 

1973년 방송법을 개정하여 프로그램 편성 기준을 보도방송 10%이상, 교양 방송 30%이상, 오락방송 20% 이상으로 정한다. 종래보다 교양을 10% 더 편성하도록 한 것이다. 1975년에는 일일극을 3편이내로 축소, 1976년에는 황금시간대 교양 프로그램 편성 의무화, 가족시간대 일괄 편성, 일일극 2편 이내로 축소 등 방송 정화 정책이 강화된다. 드라마 홍수 시대가 강제로 종료된 것.

 

 

정부 규제 강화

 

1976년 문공부의 권고 형식의 TV 프로그램 편성지침에 따라 방송은 획일적 편성으로 바뀐다.

<시간대별 프로그램 편성 기준>

오후 6시대 어린이 시간

7시대 가족 시간

8시대 민족사관 정립 드라마 및 캠페인 시간

9시대 종합 뉴스

9시 30분 이후 오락 프로그램 시간대

 

1972년 10월 유신 이후 방송은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유치한 언동, 애드리브에 의한 저속한 대화, 아동교육에 악영향을 주는 작희적 행동을 피하라는 강한 정부 규제를 받는다. 1977년 가을 개편을 앞두고 코미디를 일제히 폐지하라는 지시를 받지만 반발 여론이 일자 주1회 코미디 프로그램은 생존하게 된다. <웃으면 복이와요>는 캠페인성 코미디로, <고전 유머극장>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코믹 사극으로 변신했다.

1070년대는 광고주가 붙지 않고 방송사 자체 비용 부담 프로그램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프로그램을 광고주에게 팔았다.

 

공영방송기(1980~1990)

 

1980년대는 언론기본법과 한국방송광고공사법 제정 등 법과 제도의 개혁, 언론통폐합과 컬러 방송 개시, 교육전담방송의 출현, 아침방송 재개 등이 이루어졌다. 방송위원회는 공영방송의 지침으로 방송의 운용과 편성에 관한 기본방향을 각 방송사에 통보했다.

 

방송사 통폐합과 편성 변화

 

1980년 방송사 통폐합 방침에 따라 TBC를 인수한 KBS는 기존 채널은 제1텔레비전, TBC채널은 제2텔레비전, 3개월 후 발족한 교육전담방송은 제3텔레비전으로 구분하여 3개 채널을 소유한다. 각 채널의 편성방향은 채널의 고유 성격을 갖고 상호보완하는 것이었다. 제1TV는 전국 네트워크로 연결된 기간방송으로 종합편성의 성격을 유지하고 제2TV는 처음에는 성인 대상의 교양방송 위주로 편성하되 수도권 시청자 취향에 알맞은 편성방침을 부여했으나 제3TV가 개국하면서 수도권 시청자 대상의 종합편성 성격으로 전환한다. KBS의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방송사상 초대형 프로그램으로 기록을 남겼다.

 

 

 

컬러TV의 도입

 

1980년대 대표적 변화의 하나는 컬러TV의 도입이다. 텔레비전 컬러와로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대형화 추세를 보였고 쇼 프로그램과 뉴스 프로그램의 편성이 확대되고 비중이 높아졌다.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교양 프로그램도 신설되거나 강화 되었다.

 

교육방송

 

1981년 교육전담방송인 KBS 제3TV가 발족되었다. 사교육 문제를 해소할 목적으로 정부가 방송을 이용하고자 한 것.

 

아침방송 부활

 

 

전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중단되었던 아침방송이 1981년 5월에 부활했다. 에너지 사정이 좋아진 이유도 있지만 1980년대 말 언론통폐합과 1981년 전두환 대통령 취임과 11대 국회 개원을  계기로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정치적 안정을 꾀하기 위한 정권의 정치적 목적이 작용한 것. 각 방송사는 평일 매일 4시간의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주로 생방송 위주의 편성을 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1980년대 중반기는 정부의 편성 통제가 완화되면서 방송사의 자율적인 편성과 프로그램 개발이 활성화된 시기. 한국 최초의 TV만화 개발, LA 올림픽과 86아시안 게임 등 국제 스포츠행사가 연속되어 스포츠 편성이 강화된 것도 특징. 1980년대 후반기는 6.29 선언 이후 방송에도 민주화 바람이 몰아친 시기다. 5공화국 정권의 언론통제의 법적 장치였던 언론기본법의 폐기와 새로운 방송법 제정, 방송의 공정성과 자유에 대한 요구가 편성과 프로그램에 반영되었다. 여론 수렴을 위한 정치.사회문제 토론이 활발해져 KBS 심야 토론 <전화를 받습니다>, MBC의 <진단 87> 등 토론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았다.

 

공민영 방송기(1991~현재)

 

1990년대는 다매체 다채널 사회가 열린다. 방송법 개폐로부터 시작된 1990년대의 방송계의 현상. 방송에 대한 시정 요구에 따른 방송계 내부 갈등이 편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민영상업 텔레비전 방송 개시로 상업적 오락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편성과 프로그램이 치열한 경쟁적 상황에 돌입한다. 또한, KBS의 제2공영방송 원년 선언 이후 공영성이 강화되면서 KBS 텔레비전 방송이 여타 방송에 비해 강세를 보이게 된다.

 

 

외주제작물 의무편성

 

1990년대 방송편성에서 나타난 또다른 변화는 외주제작물의 편성을 의무화했다는 점. 1995년 케이블TV와 지역민영방송의 출범으로 뉴미디어, 다채널 시대에 진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지상파방송사들의 편성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방송법상 편성쿼터제 변화

 

200년 개정된 통합방송법의 편성 관련 특징 중 하나는 쿼터제가 명시되어 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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