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umanities(인문학)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 리뷰

by roo9 2021. 9. 24.

 

플로베르의 앵무새

 

여섯 명의 북아프리카인이 플로베르 동상 밑에서 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심한 먼지가 일었다.

 

 

먼저 동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플로베르는 시선을 피하고 있다. 이 동상은 원래의 작품이 아니다. 1941년, 독일군이 플로베르의 첫동상을 쇠울타리와 문고리까지 함께 어디론가 가져갔다.

 

 

플로베르에 관한 한 지금까지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우연히도, 플로베르 자신의 소망대로 된 것이지만 이것을 감상적으로 아쉬워하는 사람은 플로베르 팬들 뿐이다.

 

 

 

내가 그 동상 이야기부터 시작한 이유는 이 책의 전체 구상을 그곳에서 세웠기 때문이다.

 

...

 

플로베르는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쓰인 텍스트의 객관성과 작가 개성의 무의미성을 플로베르만큼 신봉한 작가도 드물다.

...

 

우리는 언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이 뒤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진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크루아세를 뒤로 미루기로 결정하고 루앙에 5일간 머물렀다.

 

한때, 나는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겐 아이디어가 많았고 준비 노트까지 만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결혼해서 자식이 있는 의사였다. 사람이 정말로 잘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플로베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쓰이지 않은 책? 그 때문에 분개할 이유는 없다. 그런 책은 이미 너무나 많이 있다.

 

가장 확실한 쾌락은 기대의 쾌락임을 플로베르는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첫날, 나는 루앙의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하루를 보냈다.

 

 

..

흑백 사진 같은 나의 기억을 채색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이튿날 나는 캉을 향해 서쪽으로 차를 달리다가, 바닷가를 향해 북쪽으로 갔다.

 

불길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매우 조용한 거리이다.

나는 해안이 바라보이는 마린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무런 감동도 없었다.

점심 식사 후,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바이외까지 차를 몰고 갔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포착하는가?

과거란 흔히 그 돼지새끼처럼 행동하는 듯하다.

루앙에서 셋째 날, 나는 걸어서 시립 병원에 갔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로베르가 의사라는 말인가? 그럴 법하지 않다...

시립 병원에서는 야위고 침착하지 못한 안내원이 나를 맞이했다.

흰옷이란 소독이나 공정한 판정을 뜻한다.

다른 방들에는 18~19세기의 의료 기구들이 있었다.

나는 귀스타브의 형, 아실의 박사 학위 논문을 검토했다.

나는 이 시대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숨이 막힐 정도의 증오심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꽉 막힌 탈장의 경우처엄 똥물이 나의 입에 고인다.

 

그 다음에는 앵무새를 보았다. 룰루란 이름의 새. 그 앵무새는 3주 동안 그의 책상 위에 있었으며, 그 새의 모습이 그를 짜증나게 했다고 쓰여 있다.

 

룰루의 보존 상태는 좋았다.

 

플로베르는 후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을 갖는 것을 경멸스럽게 금한 작가였지만,...

 

작품에 대한 반응이 곧 작가에 대한 반응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보존 상태가 좋은 이 앵무새를 보고 이 작가를 옛날부터 알고 지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감동을 느꼈을 분 아니라 기운이 나기까지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학생판<순박한 마음>을 샀다.

펠리시테라는 불쌍하고 교육받지 못한 하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앵무새 룰루이다. 시간이 흘러 그 새도 죽고 펠리시테는 그것을 박제로 만든다.

 

소설의 끝 부분에 펠리시테 자신도 죽는다.

 

 

이야기의 어조를 조절하는 것은 중요하다. 앵무새는 플로베르식 기괴함이 완벽하게 다듬어진 전형이다.

 

.평론가들은 여러 가지 유사성을 들추어냈다. 두 사람 모두 고독했다. 물론, 기본적인 면에서 펠리시테는 플로베르와 완전히 대조적이다. 그녀는 전혀 말이 없는 사람이다.

펠리시테+룰루=플로베르?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는 플로베르가 그 둘에 내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플로베르가 앵무새와 만난 4번의 경우를 주목해야 한다.

1853년, 그는 또 트루빌에 가 있었다.

 

 

나는 호텔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집요하게 완벽한 문체를 추구했던 작가, 아니면 언어를 불충분한 것이라고 비극적으로 생각했던 작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루앙 시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크루아세로 차를 몰았다.

그때 나는 위쪽 벽장 위에 또 다른 앵무새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여자  안내원에게 어느 쪽이 진짜냐고 물었다.

 

...죽기에 알맞은 때가 따로 있는가?

 

집에 돌아온 뒤에도 두 마리의 앵무새가 나의 마음속에서 계속 푸드덕거렸다. 그중 하나는 사랑스럽고 솔직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다른 하나는 건방지고 의심에 찬 모습이었다.

 

만일 둘 다 아니라면, 이번에는 그가 어떤 박물관에서 아무 앵무새나 빌려다가 모델로 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종에게는 죽은 뒤에도 처녀 생식을 하는 위험한 성향이 있음을 그에게 경고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