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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인문학)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中

by roo9 2021. 9. 23.

주기율표-프리모 레비

 

 

 

 

내가 글을 쓰고 싶고, 보다 색다른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서도 내 까짓게 글을 써서 뭐할까. 그냥 일상에서의 사유와 노동의 즐거움 속에 살면서 취미로 어쩌다 글 쓰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고... 그렇게 지내는 삶이 보다 활동적이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어떤 특정한 스토리 없이도, 그러니까 챕터별 연관성이 각별하게 느껴지지 않아도 자서전이라 할지라도 감동을 주고, 읽을 만하다면

그것은 소설로서, 문학으로서 가치가 있겠구나, 하고 느낀 책. 사유와 통찰 그리고 지적 능력이 남다르게 느껴진 책.

 

 

 

주기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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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립톤,

움직임 없는 것=아르곤,

낯선 것=제논. 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활성 기체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낯선 것(제논)이 극도로 탐욕스럽고 활발한 플루오린과 잠깐 동안 결합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 일이 있었을 뿐이다. 또 이러한 비활성 기체를 가리켜 귀한 가스라고도 한다. 희유가스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아르곤, 곧 움직임 없는 것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그 양은 이 지구상에서 생명체의 흔적이 유지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이산화탄소보다도 스무배 또는 서른 배나 많은 양이다.

우리 선조들은 바로 그러한 기체들과 비슷한 데가 많다. 그들 모두가 물질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아주 활동적이었거나 그랬어야만 했다. 먹고 살아야했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지배적인 도덕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내면의 정신만큼은 열심히 움직이기보다는, 세상사와 무관한 생각, 재치 있는 대화, 고상하고 세련되며 대가 없는 토론에 빠져 있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이 남겼다는 행적들이 제각기 성격이 다르면서도 모두 공통적으로 정적인 데가 있고, 품위 있는 절제의 태도, 큰 강처럼 흐르는 삶의 대열 변두리로 자발적으로 물러서는 태도가 서려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고귀하고 활동적이지 않았으며 드물었다. 그들의 역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늘 그렇듯이 거부 반응은 상호 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소수민족 편에서는 대칭 장벽을 세워놓고 모든 기독교도와 대립하였다. 이러한 근본적인 위상 전환은 우리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이 지닌 선량한 위트의 밑거름이 되었다. 자신들을 자랑스럽게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규정했다.

 

함축적인 의미가 풍부하다.

 

이 은어에 대한 역사적인 관심은 빈약하다. 주변부에 속한 언어, 과도기에 있는 언어가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사실 이 언어에는 탄복을 자아내는 희극적 힘이 담겨 있다.

 

 

 

내게 화학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담은, 무한한 형태의 구름이었다. 이 구름은 내 미래를 번쩍이는 불꽃에 찢기는 검은 소용돌이로 에워쌌는데, 마치 사나이 산을 어둡게 둘러싼 구름과 비슷했다. 모세처럼 나도 그 구름 속에서 내 율법이, 내 내부와 내 주변, 세계의 질서가 나타나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난 그들이 원하는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아난 가까운 길을 찾을 거야.

 

그 골목은 마치 포유동물의 진화된 구조 속에 갇힌 흔적기관과도 같았다.

 

 

선택지가 많아서 곤란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난처함이 있었다. 우리들의 , 우리 가족의, 우리 계층의 오래된 위축감과 관련 있는 난처함이었다. 우리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아니 거의 없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쓸모없고, 중요한 것은 직접 맞붙는 것이다. 쓸모 있는 자가 살아남는다. 허약한 눈이나 팔, 코를 가진 자는 되돌아서서 직업을 바꿔라.

 

대리자 역할을 하는 모든이들이 그렇듯이, 아주 흥미 있는 인간의 표본이었다. 권위를 상징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권위가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데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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