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umanities(인문학)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보고서 리뷰

by roo9 2021. 9. 22.

 

 

 

 

브로덱의 보고서

프랑스의 작가 필립 클로델이 쓴 브로덱의 보고서는 전작 회색 영혼의 연장선이라고 한다​브로덱의보고서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긍정적인 여운이 남았다는 점이다.

 

 

이름도 모르는 안더러란 타인이 황량한 마을에 거주하며 생긴 일이다. 안더러는 학자이기도 하며 새로운 문명을 전파하러 온 사람이거나 링겐이란 요정의 영역에 사는 신묘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판타지로 간주했을 때) 안더러는 자연에 관심이 많고 따뜻하고 진보적 역할임에는 분명하다.

안더러는 어쩌면 고립되어 살고 있는 무지몽매한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고 진실을 알려주기 위한 선구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집단 광기 혹은 무지로 인해 안더러를 통한 그들의 과거 혹은 세상 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브데렉에게 했던 것처럼 이방인에게 폐쇄적이었으며 심지어 그를 없애기까지 했다. 그리곤 그들의 치부이자 숨기고 싶던 브레딕이란 존재를 통해 소설이 아닌 보고서를 써달라고 한다.

 

 

브로덱은 왠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 안더러가 싫지 않았었다영화적 상상력을 배가시키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스릴 넘치는 미스테리물 같지만 실제론 사실에 근거한 지극히 역사적인 소설이었다.

 

소설은 나치 치하의 2차 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썼다는 작가집단 광기로 인해 억울하게 당한 이방인의 치유 과정을 담고 싶던 걸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작가는 프랑스인이라는 점이다. 프랑스인이 독일의 치부를 건드린 소설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물론 이건 완전 빗나간 해석일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가의 모호한 익명성이 그러한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주변인 혹은 이방인 입장에서 처한 상처를 다룬 글이라고 생각했다.

 

 

 

똥개처럼 비굴하게 버티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관조적 자세를 취하다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달라고 주체성을 찾아가는 것 같다.

물론 거기에는 사랑이 주효하게 작용한다. 사랑 때문에 두려움을 몰랐다고 받아들여도 될런지 모르겠으나...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 로 시작하는 첫 장이 역설처럼 의미심장하게 와 닿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늘 '안더러', '타인'이었다. 아마도 어디서 온 사람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우리와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어떨 때는, 고백하건대, 그 사람이 나 같다고 느껴졌다...

 

..진실이란 손모가지를 분지를 수도 있고 도저히 끌어안고 살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헌데 우리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살아 나가는 것이다. 가능한한 고통스럽지않게. 그것이 인간이다.

전쟁을 겪어봤다면 틀림없이 당신도 우리와 같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나는 잠자코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라고 요구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이 집단 괴물로 변신하여 유대인은 물론 주변인까지 학살을 자행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타인이든, 타국이든 주변인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데는 못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리라 본다.

 

"소설을 쓰라는 게 아니야. 그냥 있었던 일을 적으면 돼. 네가 쓰는 보고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이것도 하나의 역설인 것 같다.

 

"내가 ''라고 하는 건 우리 마을 전체, 주변의 부락 전체, 우리 모두를 뜻하는 거라고. 동의하지?"

  '읽는 사람이 이해하도록'이라, 아마도 그래야겠지. 하지만 '용서하도록',

그건 좀 다른 문제지. 나는 그 말을 감히 입밖에 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여러 해 전부터 알던 그 모든 사람들이 방금 저지른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농부이고 장인이며 소작농, 산림 감독, 하급 공무원들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함께 있던 죄수들 모두 이미 오래전부터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너는 우리를 가둔 인간들보다도 못한 놈이야. 너는 짐승이야......

.... 그들은 죽었다.

모두 죽었다.

나는 살아 있다.

그들에게는 살아남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을까?

 

 

 

 

이 책이 던진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었을 거다. 브로덱은 사랑 때문에 살아 남았다. 사랑하는 에멜리아를 되찾기 위해서. 두려움 없는 사랑 때문에...

 

..삶의 단계라네....처음에 본 것은 순수의 시대,

그 다음은 어리석은 분노, 여기는 관조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는 두려움이 나의 옷이 돼 버린 것 같다....

가장 이상한 점은 수용소에서 똥개 브로덱이 됐을 때, 그때는 두려움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곳에는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젯밤 마을 사람들이 안더러를 죽였어요. ...

난 나중에야 거기 갔어요.

살인에 가담하진 않았어요.

'보고서'를 쓰는 임무만 받았지요..... 그게 다예요....

말이 입술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입 안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죄가 없다는 것은 무고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죄인과 결국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은 떠나온 곳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오.

두고 온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돌아갔을 때 무엇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더군다나 인간이 한참 동안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당신은 아직 젊어요....

명심해 두시오......

청이 있는데

... 그 아이를 용서하시오.. 그들을 용서해 주시오....."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지." 늙은 은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넌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어.

항상 사물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있었거든...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려고 했지."

 

  .. 이 같은 비겁함이, 비록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닐지라도, 이것이 역겨웠다.

따지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나를 시켜 '보고서'를 쓰게 한 사람들과 다를게 없다.

 

..인간은 이렇게 생겨 먹었다.

그래도 스스로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고,

관념과 꿈과 이상한 멋진 것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인간은 자신이 물질적 존재이며 머릿속에서 꿈틀거리고 싹트는 것 못지않게 두 궁둥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도 중요한 그의 일부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잠시 잠재울 수 있을 뿐....

 

.."이 모든 것의 대가를 과연 누가 치르게 될까?"

샤이데거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경리가 할 만한 변변치 못한 변명,

초라하고 품위 없는 말.....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용서? 나의 용서? 그는 그렇게 애원하듯, 걱정하듯 나를 잠시 바라봤다..

그래서 나는 짖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길게, 서글프고 비통한 소리를 질러 댔고 이어서 감시견 두 마리가 나를 따라 짖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지해서 죽는 것이나 자유를 되찾은 수천 명의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는 것이나 사실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눈을 감고 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으니까.

죽음은 결코 까다롭지 않다. 영웅을 달라, 노예를 달라, 요구하지 않는다.

죽음은 그저 주는 대로 집어삼킬 뿐이다.

 

 

.."인간은 항상 다시 시작하는 동물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끊임없이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잘못을?

 

 

 

..인간의 삶은 정말 이상하다.

그 안에 뛰어들고 나면 그다음에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보다 영리한 사람들은 문만 살짝 열어 보는 것으로 만족하나 보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이방인이 와서 좋아한 사람은 우리 동네에서 나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새로운 시작,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실은 군중 그 자체가 괴물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하나의 새로운 몸뚱이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행복한 군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평화로운 군중이란 없다....

 

.."..최후에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무지라는 걸 잘 기억해 둬. 브로덱, 결코 지식이 아니야."

 

..이제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진실이 아니라 의심을 택했다.

비록 그 의심이 지극히 작고 빈약한 것일지라도.

그렇다. 나는 그 편이 더 좋았다.

 진실이 어쩌면 나를 죽일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이라고! 도대체 우리는 뭐냐? 정말 궁금하구나..."

 

나는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통을 느끼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관이 내 몸속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에게는 없다.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제거해 버렸다.

그 이후, 아쉽게도, 그것들은 내 안에서 다시 자라나지 않았다.

 

 

디오뎀은 내가 아직 인간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해였다.

....

 

"켈마르, 우리가 열차 안에서 한 짓을 생각하면 나도 계속 뛰지 말고 너처럼 멈춰 섰어야 했어. 중간에서 섰어야 했어."

"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야."

"아냐, 네가 옳았어. 그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어. 내가 비겁했어."

 

 

"내가 옳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 인간의 죽음은 말이야, 어느 누구의 희생으로도 보상할 수 없어.

그게 가능하다면 모든 게 너무 간단해지겠지.

그리고 너를 심판할 사람은 네가 아냐.

그렇다고 나도 아니고. 인간은 서로를 심판할 수 없어

. 사람은 그런 일을 할 수 없게끔 생겨 먹었어."

 

 

 

..세상에 균열은 만들지언정 갈라놓지는 못한다.

경우에 따라서 는 그려지기가 무섭게 잊힐 수도 있는 것이다.

 

..수용소가 나에게 가르쳐 준 역설은 이런 것이다.

인간은 위대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의 본성에 이러한 무능력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

 

인시류 안에 '렉스 플라메'란 이름의 변종을 소개한 부분은 소설의 주제를 함축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도대체 윤리가 뭡니까,

무슨 소용입니까? 모든 것을 초월하는 유일한 윤리는 바로 목숨입니다.

죽은 자들만 억울한 법이지요.

 

나는 디오뎀에 대해 일말의 증오도 없다.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내 고통의 기억을 떠올리기보다 그가 느꼈을 고통을 더 많이 상상했다.

또한 이해했다.....

돌아온 건 나였지만 새 삶을 찾은 것은 디오뎀이었다.

 

 

..디오뎀은 아무리 글을 써도 치유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영원히 똥개 브로덱으로 남을 것이다.

물어뜯기보다 땅에 뒹굴기를 더 좋아하는 똥개.

그렇게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늘에서는 검은 어둠 속에 별들이 은빛 못 자국을 비벼 대고 있었다.

이 땅에는 모든 것이 참을 수 없이 아름 답고 그 아름다움이 너무나 광대하고 포근하다 보니,

오히려 추악한 존재의 조건만 더 도드라지게 눈에 띄게 만드는 그런 시간이 있다.

 

 

 

 

..사람들은 침묵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아무 말 안 하는 사람을. 들여다보고 아무 말 없는 사람을 경계한다.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면 무슨 생각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안더러가 그린 초상화는 한마디로 살아 있었다.

그것은 곧 나의 삶이었다.

그림이 나로 하여금 나 자신, 나의 고통, 나의 현기증, 나의 두려움, 나의 욕망 전부와 얼굴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보았다. 생살이 드러난 모습을. 그들이 누구이고 무슨 짓을 했는 지를...

 

 

'저희는 아직 선생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름이란 아무 것도 아니죠.

저는 아무도 아닐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라고 안더러가 말했어.

 

 

어리석음은 두려움에 동반되는 병이다.

이 둘은 서로를 살찌워 암종을 만들고 그 암종은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

 

 

..떠나라고 말하기 위해 탈 것을 죽여없앰으로써 마을을 떠나는 가장 빠른 수단을 박탈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을 죽인 놈이든 사람을 죽인 놈이든 살인자는 자기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열차들은 그렇게 인간성이 부재한 나라, 인간을 부정하는 나라를 만들어 냈다.

 

"살인자들! 살인자들! "하고 외치는 약간 날카롭고 맑고 슬픔에 가득한 목소리, 안더러의 목소리였다.

 

..안더러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따. 방에 틀어박혀 있었따. 사라진 것 같았다. 혹은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양치기야. 양들은 내가 위험을 물리쳐 주길 바라고 있어.

그런데 그 모든 위험 중에서 기억이 제일 끔찍한 것이라네.

감히 내가 자네를 가르칠 수는 없겠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자네한데."

 

 

.."이제 잊어야 할 시간이네. 사람에게는 망각이 필요해."

 

분노와 증오만으로도 얼마든지 정신이 뒤집힐 수 있다. 실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독한 술이다.

 

..."이제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 것도. 그래서 자네가 불행한가?"

"종이는 불탔어도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은 태우지 못했습니다!"

"자네 말이 맞아. 종이에 불과했어.

하지만 그 종이 위에 마을 전체가 잊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있었네

. 마을은 잊을 거야. 사람이 다 자네 같지는 않아, 브로덱."

 

나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걸어간다. 행복하다. 그렇다, 난 행복하다.

 

..풍경 속에 있던 모든 것이 내 발자국 뒤에서 지워져 버린 것 같았다.

 

내 이름은 브로덱. 나는 그 일과 무관하다.

브로덱, 이게 내 이름이다.

브로덱.

부디, 기억해 주시기를.

브로덱.

 

 

이름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말인데도 끊임없이 입에 올리게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사람과 비슷하다.

몇 년을 만나도 본색을 알 수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도저히 상상도 하지 않았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지 않은가. (p.67)

 

                             마지막을 읽으면서 위 구절이 떠올랐다. 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지만...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