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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인문학)

천재 시인 랭보에 관하여

by roo9 2021. 9. 19.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랭보는 더 이상의 다른 인물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게 남는다. 랭보는 1854년 10월 20일이 프랑스의 북서, 벨기에의 국경에 가까운 샤를르빌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1년 37년 동안의 짧은 생애를 살다간 비운의 천재다.

 

시인 랭보의 생애

 

 

 

그의 아버지는 군인으로 보병대위, 어머니는 농부의 딸로서, 대범한 성격의 아버지와 검소하고 차가운 편인 어머니는 제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광신적인 카톨릭 신자에 억세고 잔소리가 심하여 다정한 맛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프랑스식 주입식의 초등학교 중학교의 교육을 받은 그가 가정에 대해서나 학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것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유달리 민감하고 지나칠 만큼 섬세한 그의 감수성을 만들어 놓은 것은 오히려 차가운 가정 분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5세가 되던 해의 8월 어느날 랭보는 동경하던 파리로 가출한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할 때 정신없이 읽은 것은 위고의 작품이며, 그 후 랭보 소년의 시를 맨 먼저 인정한 것은 신경향의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 이었다. 랭보가 파리로 간 것도 폴 베를렌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랭보가 베를렌을 따라 벨기에로 여행을 떠난 것은 19세가 되던 봄 이었다.

 

랭보 폴 베를렌과 만나고 헤어짐

 

 

 

그 무렵 랭보의 생활은 마취제 하시슈를 사용하거나 과음에 빠져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베를렌과의 추문 때문에 결과가 베를렌으로 하여금 신혼의 아내와의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마침내 그들은 방랑 생활의 길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10일 랭보는 그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베를렌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이에 절망한 베를렌은 권총을 발사하여 그의 왼손에 상처를 입혔다. 그 때문에 베를렌은 감옥에 갇히고 랭보는 샤를로빌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여행을 떠난 랭보

 

1876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자바 섬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여러 군데의 여행을 떠나고 마침내 아프리카의 오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1891년 마침내 한창 재미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극도의 피로와 좋지 않은 풍토가 그의 몸을 망쳐 놓았다. 그는 그 병을 정복해 보려고, 몸을 돌보지 않고 계속 일하였으며 그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빚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는 마르세유로 운반되었고 의사로부터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언도를 받았다. 그러한 소식을 듣고 그의 여동생 이자벨은 그가 죽는 날까지 극진한 간호를 해주었다.

 

 

 

마음이 약해진 랭보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대로 한 평생 반역하고 부정했던 기독교의 주님 앞에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신자가 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귀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있다. 랭보는 포기에 가까운 심정으로 동생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기억

나는 '죽음'에 대해 무르익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나약함은 세계와 인생의 끝까지 나를 끌고 갔다......

....

이 위험에 가득찬 하나의 길을 취하고 있었다. 그것은 거의 전부 '해독 불능'

'...에로' 하나의 '해독불능' 에는 무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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