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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최고의 젠틀맨 피어스 브로스넌의 상처 많은 인생 돌아보기

by roo9 2024. 2. 20.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아는, 혹은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알 수 있는 너무도 유명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일랜드 태생의 배우이면서 영화 제작자 그리고 소문난 애처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고독했고 사랑하는 첫 번째 아내를 잃은 상처가 있고 두 번째 아내는 무한정 살이 찌고 있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고독한 어린 시절

     

    피어스 브로스넌은 1953년 5월 16일 로우스 카운티의 드로헤다에 있는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목수의 외동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2년 동안 그는 미드 카운티 나반에 살았고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며 자랐습니다. 젠틀한 외모와 다르게 그의 가정환경은 불우한 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피어스가 어렸을 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고 그가 4살 때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하기 위해 런던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래서 조부모와 함께 지냈던 것이죠. 하지만 조부모가 죽은 후 고모집에 살다가 삼촌 집에 살다가 어떤 하숙집에 버려지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상당히 고독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전혀 본 적이 없으며 어머니는 1년에 한 두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매우 용기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간 엄마를 응원한 것이죠.

     

    그리고 드디어 1964년 그가 11살이었을 때 엄마와 그녀의 새남편 윌리엄과 함께 살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의붓아버지는 그와 함께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의 영화 골드핑거를 보러 극장에 갔습니다. 이후로 피어스 가족은 다시 런던으로 이사했습니다.  대도시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그의 별명은 단순하게 아이리쉬였습니다.

     

     

    불쇼에 매료되어 배우가 되기로

     

     

     

     

    감성적인 정서와 목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탓인지 피어스 브로스넌은 상업적인 아티스트가 되기로 합니다. 돈도 벌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최적의 직업이라고 여긴 것이죠. 그래서 16세에 학교를 떠난 후,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기 위해 예술학교에 다니다 행사장에서 불쇼 리허설을 보면서 불을 먹는 장면에 매료되어 갑자기 배우가 되기로 합니다. 그래서 런던의 드라마 센터에서 3년 동안 연기 수업을 받게 됩니다.

     

     

     

     

    처음 불쇼를 보면서 내재된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그가 연기에 눈을 떴을 때 비로소 해방을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기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는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1975년 드라마 센터를 졸업한 그는 무대에서 연기 보조로 경력을 쌓았고 점차 그의 연기는 런던에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를 사랑한 그의 의붓아버지는 피어스 브로스넌에게 사랑하는 내 아들아 신께 감사한다는 전보를 보냈고 그는 아직도 그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운명적인 사랑과 커리어

     

    그리고 드라마 센터를 졸업한 직후 소개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배우 카산드라 해리스를 만났고 1980년 이들은 결혼하였습니다. 카산드라에게는 세 번째 결혼이었고 그녀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사망 후 피어스는 두 아이도 입양해 친자식처럼 잘 키웠다고 합니다. 

     

     

     

     

     

    무대를 텔레비전으로 옮기면서 매니언스 오브 아메리카로 미국의 텔레비전 스타가 되었고 1982년부터 87년까지 방영한 텔레비전 시리즈 레밍턴 스틸로 대체불가 굳히기에 들어갑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일과 가정 모두가 완벽했지만, 그의 아내 카산드라가 엄마가 걸려 사망한 난소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투병하다 1991년 그녀 나이 43세의 나이에 사망하였습니다. 17년을 함께한 아내를 떠나보내는 것이 피어스에게는 끔찍한 고통이었기에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습니다.

     

    시리즈 물이 끝나고 스파이 영화 제4의 정서 후 1993년 코미디물 미세스 다웃파이어에 출연하였지만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1995년 골든아이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은 이후부터입니다. 지금까지도 그의 젠틀한 이미지는 건재하게 남아 있을 정도인데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딛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피어스 브로스넌은 1996년 별도의 제작사를 만들었으며 자선 사업과 환경 행동주의자로도 유명해지게 됩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1997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을 달았고 2020년에는 가장 위대한 아일랜드계 영화배우 목록에 15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멕시코에서 만난 미국인 기자 킬리 샤예 스미스와 2001년 결혼하였습니다.  부부 사이에 딜런과 패리스라는 아들이 있으며 이들은 주로 캘리포니아의 말리부에 살고 있으며 하와이의 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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