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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위협이란 별명을 지닌 누와르 최고 미인 배우 리자벳 스콧

by roo9 2024. 3. 5.

1940년대  로렌바콜 그리고 베로니카 레이크와 경쟁했던 리자벳 스콧 이야기입니다. 로렌바콜이 the look 이란 별명을 얻은 것처럼 리자벳 스콧의 소속사에서는 그녀 별명을 the threat 위협이란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그녀는 당시 누아르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미인이란 평가도 받았지만 그녀의 주요 활동은 10년 정도에 그쳤습니다. 

 

 

 

 

 

 


엠마 메조란 본명을 버리고

 

 

금발에 아름답고 냉담하고 매력적인 리자벳 스콧의 배우 활동 기간은 10년 남짓이지만 느와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평가되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였습니다. 리자벳 스콧은 1922년 9월 2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우크라이나 이민자 존 매조와 식료품점을 소유하고 있던 매리의 여섯 자녀 중 한 명으로 엠마 메조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지역 가톨릭 여고에 속하는 메리우드 신학교를 다녔으나 얼마 후 스크랜턴의 센트럴 고교로 전학했습니다. 그녀는 펜실베니아의 메리우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무슨 일인지 그녀의 부모가 반대하여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고 대신 알비엔 연극 학교에 등록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엘리자벳 스콧이란 예명을 얻었고 작은 배역을 맡고 투어를 다니게 됩니다. 투어 공연이 끝나고 1942년 그녀는 뉴욕으로 돌아왔고 배우로 이렇다 할 배역도 맡지 못한 상태에서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에서 시간당 25달러를 받고 패션모델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 그해 말에 브로드웨이 제작자에 의해 캐스팅되어 역시 작은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1943년 때마침 당대 최고 스타 탈룰라 뱅크헤드가 은퇴하면서 그녀를 대신할 스타로 리자벳 스콧은 기대가 컸지만 미리엄 홉킨스에게 밀리면서 리자벳 스콧은 다시 모델 일로 돌아가게 됩니다. 

 

 

 


연극계에서 모델 알바

 

연극계를 떠난 후 모델로 활동하고 있을 무렵 그녀는 뉴욕의 한 클럽에서 그녀의 스물 한 번째 생일 파티를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워너브라더스 제작자가 그녀를 눈여겨보게 됩니다. 이런저런 관계자들에 의해서 기회의 문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카메라 테스트 등 번번이 좌절을 맛보았고 그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945년 영화에 첫 데뷔를 하게 됩니다. 

 

 

 

 

 

 

영화는 비교적 흥행에 성공하였고 1946년에는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는데요. 무슨 깡인지 오만함인지 탑스타들과 함께 캐스팅되지 않으면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감독도 새로운 발견에만 집착하는 경향에 영화사도 홍보의 역효과를 낳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소속사는 뜨기 시작한 신인 배우 로렌 바콜의 별명 더 룩에 맞서기 위해 그녀 별명을 위협이라고 홍보하였는데요. 이것이 바콜 팬들을 분노케 하면서 오히려 리자벳을 소외시키는 비판적인 결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녀를 편애하던 월리스 감독은 다음 영화에도 그녀를 주연으로 채용하였고, 운이 좋게도 험프리 보가트의 상대역을 맡으며 하드보일드 팜므 파탈 묘사 연기를 제대로 펼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대성공을 하였고 그녀가 상당히 쎈 영화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네 번째 영화도 반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누아르 장르의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렇게 다음 영화도 비슷한 장르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드디어 스타가 되다

 

 

 

 

한창 인기 절정의 배우였음에도 리자벳 스콧은 그녀와 함께한 상대 배우 누구와도 데이트를 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소속사 직원 등과 일련의 스캔들이 있긴 했어도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헐리우드에서 이상한 여성으로 통하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항상 남성 향수를 뿌리고 남성 잠옷을 입고 잠을 잤으며 프릴 같은 여성 드레스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조금 많이 털털한 성격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요.

 

 

 

그녀는 이러한 구설수들을 피해 영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몇 편의 영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57년 헐리우드로 다시 돌아왔고 당대 최고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영화를 찍게 됩니다. 이후로 그녀는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스크린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녀의 음악 활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10년 동안 몇 편의 영화와 텔레비전에도 출연했지만 명성은 가물가물해져 갔습니다. 

 

 

 


 

은둔자 모드

 

그녀의 말년은 톱배우 답지 않게 매우 조용한 은둔자 모드로 살았습니다. 거의 집 밖에도 나간 적이 없었고요. 그리고 리자벳 스콧은 1947년 2만 7천 달러에 구입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2014년 92세로 사망할 때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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