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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wi-fy 창시자이자 배우 헤이디 라머의 라이프 스토리

by roo9 2021. 4. 8.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미녀 배우 헤이디 라머. 하지만 그녀는 단지 아름다운 얼굴만으로 기억되기엔 너무나 과학적인 천재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와이파이, GPS, 블루투스 기술의 기반이 된 '주파수 도약' 발명자가 바로 그녀라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1. 외모만큼이나 특별했던 유년기

1914년 11월 9일,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헤이디 라머는 어릴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은행장이었고, 기계에 대한 이야기를 곧잘 들려주며 라머의 이과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르골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던 유년기의 그녀는 이미 작은 발명가였다. 반면,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그녀에게 예술적 감각도 함께 길러주었다. 이처럼 과학과 예술이 균형 있게 스며든 환경은 라머를 그 어떤 틀에도 가두기 어려운 인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헤이디 라머 유년 시절

 


2. 미모가 먼저 조명된 10대 시절

라머는 16세에 한 감독의 눈에 띄어 베를린에서 배우 수업을 받고 영화에 데뷔했다. 그녀의 눈부신 외모는 영화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했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은 외면되곤 했다. 1933년, 군수산업가 프리츠 맨들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그녀를 마치 소유물처럼 대했다. 라머는 갇혀 있기를 거부했고, 결국 1937년 남편을 떠나 런던으로 향한다. 그 시기, 그녀는 군수기술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헐리우드의 뮤즈에서 과학자의 영혼을 품다

런던에서 운명을 바꿀 기회를 잡은 라머는 곧 미국 헐리우드로 진출한다. 독특한 유럽식 악센트, 우아한 외모, 매혹적인 눈빛으로 헐리우드를 매료시킨 그녀는 빠르게 스타덤에 오른다. 그 무렵, 비행기 개발자이자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를 만나게 된다. 둘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실제로 비행기 날개 디자인에 관여하기도 했다. 라머는 단순히 연기를 넘어서 세상의 구조와 기술을 개선하는 데 열정을 가진 창조적 지성인이었다.


4. 발명의 핵심: ‘주파수 도약’이라는 시대 초월적 사고

라머는 음악가 조지 앤틸과 함께 통신 기술의 보안 강화를 위한 ‘주파수 도약’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이 기술은 무선신호가 특정 주파수에 고정되지 않고 계속 이동함으로써 해킹을 막는 원리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실용화되지 못했지만, 후일 이 기술은 와이파이, 블루투스, GPS 통신 기술의 기초가 된다. 라머는 과학자도, 공학자도 아닌 배우였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력과 원리에 대한 직관은 현대 통신 기술의 토양이 되었다.


5. 천재의 대가는, 무관심

라머는 발명 특허를 받았지만, 정부는 이를 군사기밀로 분류하며 보상하지 않았다. 특허는 만료되었고, 그녀는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배우로서만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2000년 사망 후, 2014년 그녀는 마침내 미국 국립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너무 늦었지만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이름이었다.

 

연구중인 헤이디 라머


그녀는 외계인이었을까, 시간여행자였을까?

헤이디 라머는 단순한 스타가 아니다. 그녀는 물리 법칙의 미를 느낄 줄 아는 직관과, 세상을 새롭게 바꾸고자 했던 의지를 지녔던 이 시대의 경이였다. 밤쉘(Bombshell)이라는 제목의 그녀 다큐멘터리처럼, 라머는 단지 ‘예쁜 폭탄’이 아니라 진짜 혁명가였다.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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