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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사랑과 함께 사라진 비비안 리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by roo9 2021. 3. 10.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비비안 리. 그녀의 삶은 찬란했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웠고, 사랑은 모든 것을 태워버렸습니다. 화려함과 불안, 명성과 병이 교차했던 그녀의 생애를 돌아봅니다.


1. 다즐링에서 태어난 한 소녀, 비비안 하틀리

1913년 11월 5일, 인도 다즐링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영국계 증권 중개사, 어머니는 아일랜드 출신 여성이었죠. 그녀의 이름은 비비안 하틀리(Vivian Hartley). 여섯 살 무렵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유복한 환경 속에서 유럽 각지의 학교를 다니며 자랐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 단조로울 리 없었죠. 19세에 변호사 리 홀먼과 결혼하며 잠시 연기를 접었고, 딸 수잔 패링턴을 낳았습니다. 외모가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녀는 결혼 후 자신만의 아우라와 미모, 연기력을 꽃피우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의 비비안 리

 

2.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 치명적인 사랑

1935년, 비비안은 영화 데뷔를 통해 배우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첫 주연작에서는 변덕스러운 요정 역을 맡았고, 그 무렵 그녀는 유부남이자 당대 최고의 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녀의 사랑은 격렬했고, 가정을 버릴 만큼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1940년, 둘은 공식적으로 결혼하지만 사랑은 곧 시련이 됩니다.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얻은 그녀에게 정신적 고통과 피로, 불안과 조울증이 찾아왔고, 이 모든 건 곧 그녀의 파국을 암시하는 신호였습니다.

 

3. 영광과 그림자의 분기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939년, 그녀는 스칼렛 오하라로 캐스팅되며 단숨에 세계적 스타가 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그녀를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지만, 그 성공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심리적 압박과 외부의 시선을 그녀에게 안겼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말합니다.
"내 안엔 둘이 있어요. 하나는 세상이 원하는 나, 또 하나는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나."

이후 그녀는 영화 《클레오파트라》 준비 도중 유산을 겪고, 조울증과 결핵, 불면증으로 점차 쇠약해집니다. 심지어 신종 치료법이었던 전기충격 요법으로 얼굴에 화상까지 입게 되었고, 그녀는 점점 술과 불안에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속 드레스 이미지

4. 배우로서 마지막 불꽃, 그리고 무너진 사랑

1949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그녀는 조울증에 시달리는 여성을 연기하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 비비안 리도 올리비에와의 불화, 또 다른 유산, 정신병적 증상들로 점차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1960년, 둘은 결국 이혼하게 되고 올리비에는 곧바로 재혼합니다. 비비안은 연하의 남성과 교제했지만, 결코 올리비에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찬란했던 빛은, 결국 가장 날카로운 고통의 근원이기도 했습니다.


5. 바람처럼 떠난 그녀, 그러나 남겨진 사랑

1967년, 비비안 리는 조용히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장례는 올리비에가 직접 치러줍니다. 올리비에는 훗날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눴지만, 비비안만큼 나를 흔든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도 그를 사랑했고, 그도 결국 가장 사랑한 여인은 비비안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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