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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인문학)/모든것의 역사

고대 문명의 발상지 강가에서 벌어진 일

by roo9 2021. 11. 7.

 

 

이집트 나일강과 다르게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나일강 삼각주에서 정동향으로 2160킬로미터 떨어진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들어가지만 원래 터키의 산악지대에서 시작해 이라크를 통과한 페르시아만에 도달하기 직전에 하나로 합쳐진다. 복합 하천에는 상하류를 나누는 급류지대가 없지만 바람도 일정하지 않고 하류에는 습지가 많았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에는 다수의 신전이나 사제와  연관된 촌락 관계망이 출현했다. 촌락의 취약한 방어 수단을 막을 방법은 장벽을 쌓는 길이었다. 그리하여 장벽으로 둘러싸인 도회지가 발달했고 훈련된 군대를 보유한 우루크, 라가시, 키시같은 소규모 도시국가로 변모했다.

 

 

그러니까 이집트인들은 생각 하게 인간들이 지을 거대한 건물이 필요했고,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군대에서 싸울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지배자들은 군대를 이끌고 상류나 하류로 진출해 인근 공동체를 정복하려 했다.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세웠고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자원을 지키려면 규모의 군대가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전쟁을 해야 했다.

 

 

기원전 24~23세기아카드의 사르곤왕은 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국가 대부분을 정복하여 역사상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다양한 물건을 제작하고 사고파느라 바빴고 그러한 가운데 메소포타미아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사업가적 개인주의와 경쟁적 다원주의가 탄생했다고 한다. 가지 사상은 훗날 이슬람 문명과 유럽 문명의 공통적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변심의 귀재 인더스강 지구 최초의 도시 문명 하나이자 20세기 초에 발굴되었으니 가장 마지막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금은 사라진 도시 하라파와 모헨조다로가 존재하였고, 파라파 문명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가 건설되고 있을 때가 전성기였다.

 

 

당시 인더스강 유역에는 500 명이 살았고 곳곳에 이상의 도회지가 분포해 있었다. 이유는 유역의 관개는 별도의 관리 없이도 문제 없었고 농사도 쉬웠다. 풍요로움은 여가로 이어져 하라파인들은 예술과 공예와 공학에 몰두했다. 그러나 물은 언제나 뚜렷한 이유없이 경로를 바꾸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여섯 개의 유역이 다섯 개로 사라지자 사람들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런 와중에 히말라야 산맥 근처 살던 유목인들은 수시로 고개를 넘어 쳐들어왔고 약탈로 시작하던 것이 인근 스텝 지역의 정착으로 이어졌다.

 

3,500 문명이 쇠락해갈 무렵 신규 이주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이방인들의 세계관은 정착인들과는 달랐고 현지인들과 쉽게 어울리거나 동화되지도 않았다. 나름 도시인 하라파인들과 시골인 스텝 이주민은 신념도 달라서, 하라파인들은 풍요의 신을 숭배했고 여성성을 지향했고, 이주민들은 스텝 유목 생활에서 영향을 받아 바람, 천둥, 태양, 따위의 힘있는 남신을 숭배했다. 게다가 안정보다는 전진하려는 호전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리하여 갠지스 강 유역까지 도달하고 그 문화를 흡수하였는데 갠지스강 유역 사람들은 드라비아어를 썼고 오늘날 북서쪽에서 나타나 인더스강 유역을 거쳐 갠지스강 유역까지 진출한 이주민들을 베다인이라고 불렀다. 드라비아어를 쓰는 그들은 베다로 불리는 경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런 문화가 남쪽에서 올라온 문화와 만나면서 인더스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다인들이 믿는 신화속 신비한 음료인 소마는 그리스 신화 속 넥타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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