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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인문학)/모든것의 역사

중국과 인도의 세계관 차이 동그라미와 세모

by roo9 2021. 11. 13.

옛날 중국인들은 세상을 동심원 형태로, 역사를 순환하는 것으로 여겼다. 세계의 중심이라 여긴 제국은 가문의 왕조가 다스렸고 왕조는 예측 가능한 순환 과정을 거쳤다. 

 

중국은 동그라미 인도는 세모

 

 

 

 

 

왕조의 개창자는 세상을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왕조는 천명을 남용했고 제국은 파탄을 맞았다.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이 찾아왔다. 사람이 천하만물을 다스리라는 명을 받았고 사람은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같은 과정은 계속 되풀이되었다기원전 500년경, 공자란 인물이 중국 문화의 의식 절차와 관례를 바탕으로 신념 체계를 정립했다. 그는 평소의 행실, 특히 가정에서의 행실에 초점을 맞췄다. 그가 제시한 이상 사회에서는 제국과 가정이 마치 쌍둥이 같아 단일한 전체를 이루었다.

 

세계를 여러 개의 층으로 본 인도

 

중국으로부터 남서쪽으로 1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전혀 다른 거대 서사가 무르익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세상을 동심원 형태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에게 세상은 여러 개의 층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촌락에는 가지 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오래된 계층화(원래는 바르나였다가 카스트로 불렸다) 직업에서 시작했다.

 

 

즉 인도인들에게 시간은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허황된 것으로 보았다. 기원전 900년경, 사두로 알려진 심오한 사상가들이 갠지스강 유역 주위에 연달아 나타났다. 그들은 힌두교에 해당하는 신념 체계의 씨앗을 추출했다. 우파니샤드라는 성가를 통해 그들은 세상을 환상으로 여기고 실재를 단일하고 통합된 전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완성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영혼이라고 노래했다. 몸이 죽을 영혼은 새로운 몸으로 환생하는 윤회를 경험한다고 노래했다.

 

우파니샤드의 업 사상

 


우파니샤드에는 우주의 철칙인 사상이 담겨있다. 모든 행동은 상응하는 행동을 촉발했다.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는 성행위와 폭력을 삼가고 소유물을 포기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있다고 선언했다. 다른 사상의 시조인 부처는 철학보다는 이승에서의 끝없는 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 수단을 제시했다. 그는 세상을 신중하게 살아가고, 중도를 실천하고, 명상 기법을 이행하라고 그렇게 하면 해탈의 경지인 열반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베다인과 이란인

 

 

그들은 하라파인들이 남긴 문명의 흔적을 흡수했고,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베다인이라고 부른다. 서쪽으로 향한 사람들은 이란-(아리안이라는 단어와 어원이 같다)으로 이주했다. 베다인들과 이란인들은 지리적으로 다른 이동 경로를 택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서로 갈라졌다. 원래 그들이 함께 썼던 언어는 남쪽에서는 산스크리트어, 서쪽에서는 아베스타어가 되었다. 성가는 남쪽의 인도에서는 베다, 서쪽의 이란에서는 아베스타가 되었다.(88.)

 

조로아스터교의 탄생

 

 

예언자 조로아스터도 같은 주제들을 간추려 하나의 신념 체계를 만들었다. 기원전 1200년경에 , 늦게 잡아도 기원전 600 경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조로아스터는 서른 살까지 수선공(대장장이)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날 산에 올라 창조와 불의 신을 알현하라는 부름을 받고 계급으로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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