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은 승록사 설치(불교 관련 업무 맡은 기관), 비보사찰 건립(훈요 10조와 관련). 훈요 10조에서 불교와 관련된 게 2개. 연등회와 팔관회 성대하게 개최하라, 개경 주변에 사찰을 많이 건립하라 도성이 전한 자리에...(풍수지리 관련) 그래서 10개 건립되는데 비보사찰.
고려시대 불교 키워드
4대 광종은 승과 제도, 왕사.국사 제도를 둠 이는 고매한 승려를 왕사(왕실일 자문) 국사 임명은 (나라 일에 관여) 균여에게 시켜 귀법사 창건, 사원에 토지와 노비 지급하고 각종 면세 혜택. 4대 광종 때 등장하는 승려가 균여와 혜거
균여는 보살의 실천에 힘썼다. 교종 쪽, 화엄종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는 임무.
혜거에게는 법안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도록 시킴.
팔관회: 순수한 불교행사가 아닌 토착신앙과 불교의 융합.
연등회는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 하지만 팔관회는 개경과 서경에서만 함. 호국영령,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이들 위해 제사 지내고 하루를 즐김. 팔관회의 유래는 신라 진흥왕때 혜량이 전몰 장수들에 대한 추모법회에서 시작. 송나라, 아라비아 상인등이 팔관회에 북적거리게 드나듦. 팔관회는 고려 최고의 행사.
제관은 천태학을 중국에 전파, 천태사교의 저술. 초기는 균여와 제관
고려 중기 불교의 특징
고려 중기-왕실을 대표하는 종파가 화엄종, 귀족이 좋아하는 종파가 법상종 둘의 반목과 질시가 심함. 의천은 문종의 4째 아들 15살에 국사가 됨. 원효의 화쟁 사상 계승 , 흥왕사 주지가 되어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 나중에 국청사를 창건하여 국청사 주지를 지내면서 교종 중심으로 선종까지 통합해서 해동 천태종이란 불교를 만듦. 이는 교단 중심의 통합에 머물렀음. 의천이 뛰쳐나가면서 교다은 다시 분열됨.
의천이 수행 방법으로 이행한 게 교관겸수와 내외겸전. 교관겸수은 가르칠교, 직관. 내외겸전은 내적외적 두루 갖춰야 함. 의천은 화폐 주조를 건의, 조정간행을 건의. 원종문류, 천태사교의 주, 석원사림 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고려후기 불교
무신집권기 보조국사 지눌은 당시 불교계 내부 타락이 심해서 내부계 좌정운동이 일어남. 지눌이 주도한 정혜결사 주도. 정혜결사에서 수선사가 된 것. 지눌이 주도한 신앙결사는 정혜결사 또는 수선사라고 함. 수선사 내용은 예불과 독경 그리고 수행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자. 이건 지방민이나 불교 교단의 지지를 얻고 이것을 가지고 나중에 지눌이 선종을 중심으로 종파를 만든 게 조계종. 돈오점수와 정혜쌍수가 수행방법, 돈오점수(탁치니 한순간에 깨닫는다. 점수 점점더 수양한다.) 정과 혜는 함께 닦아야 한다가 정혜쌍수.
조계종
조계종은 의천처럼 불안정한 통합이 아닌 선교일치의 완성을 보았다. 한국 불교의 70프로가 지금도 조계종.
혜심은 출가하기전 유학자. 유학 후 불교 공부를 해봤더니 근본이 다르지 않더라. 그게 유불일치설. 석가모니께서 두 명의 제자를 중국에 보냈다. 유동보살, 가석보살 유동보살이 공자, 가석보살이 노자. 도교와 유교는 부처님 제자들이 가서 퍼뜨린거다. 기본적으로 불교와 유교는 뿌리가 같다는 거. 혜심의 유불일치설은 성리학 수용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요세는 지눌보다 나이가 아래. 처음에는 정혜결사에 몸 담다가 아닌 것 같아서 따로 독립.
강진 만덕사에 백련사라는 신앙조직 결사. 요세사상은 참회신앙을 강조하는 법화 신앙. 좀더 개혁적이고 좀더 민중적이라 이들에게 많은지지. 요세는 정토왕정신앙(죽어서 정토왕생 즉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 법화 신앙과 정토왕세진앙.
고려말 공민왕 시대 보우
그는 임제종을 고려에 처음 소개. 사원폐단이 심해 비판하고 교단 개혁 시도했지만 잘 안 됨.
의천의 천태종은 왕실이나 일부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통합은 불안정.
지눌의 조계종은 최씨 무신 정권의 지원을 받고 선교일치의 완성을 보았다는 평가 받음.
고려의 대장경은 2개.
초조 대장경과 팔만대장경
교장은 대장경 주석서들을 모아서 따로 간행한 것을 의미.
대장경의 정의는 경률론으로 불교이론을 체계화한 것. 경은 부처님 말ㄱ씀, 율은 실천윤리. 론은 학자나 승려들의 정쟁. 의견을 의미.
경.률.논에 맞게 체계화 되는 것은 이해 정도가 심화 되어야 함. 고려는 대장경을 두 번 조판함. 둘 다 목판. 이는 국란 극복과 관련이 있음.
초조대장경은 고려 2차 침입 막기 위해 불력 막기 위해 만듦 70년 걸리고 6천권. 몽고 침입 때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다 몽골병에 의해 불 탐. 그 소식을 듣고 최우 정권때 다시 한 번 제조... 목판 활자로 8만자라고 하여 팔만대장경. 15년 동안 만들어지다 조선초에 합천해인사로 옮겨지다. 세계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 팔만대장경은 고려 목판인쇄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교장 만들기 위해 설치된 것이 교장도감. 팔만대장경 만든 후에 힘이 남아서 향약구급방도 만듦.
도교와 풍수지리설
도교-초제 성행, 도교 사원 여러개 건립. 예종 때 건립된 복원궁. 고려 도교의 한계는 중국 교리처럼 일관된 교리체계나 교단조직을 갖추진 못했다.
풍수지리설-초기에는 개경과 서경 명당설(북진정책 추진, 서경천도)
남경길지설 대두, 남경 승격(문종)
궁궐 건립(숙종), 해동비록(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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