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수취제도: 고려는 논과 밭(논은 수전, 밭은 한전) 논과 밭의 비옥한 정도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토지세를 거둠. 과세는 생산량의 10분의 1.
공물(공납)-호 단위로 토산물 징수, 나라에서 필요한 공물을 종류와 액수를 주어 주현에 부과(주현공부법), 별공과 상공
역-16세에서 60세까지 양인 남자가 군역과 요역의 의무. 노동력 징발은 인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집집마다 9등호로 나눔.
문종이 시행한 재면법은 재해를 입으면 조세를 일정 부분 깎아주는 제도. 개간한 땅에 대해서 조세나 소작료 일정 기간 면제-
사전(1년 면제, 1/2), 공전(3년 면제, 1/4)
재정 담당 관청-호부와 삼사
호부(호적과 양안 작성 관리), 삼사(회계 담당) 송나라 삼사는 재정을 총괄하는 관서지만 고려의 삼사는 화폐와 곡식의 출납을 담당하는 기관.
전시과-
전시과는 문무관리나 나라의 직역을 맡고 있는 사람을 1과부터 10과까지 분류. 이들에게 토지와 임야를 주는 것. 소유권을 주는 게 아닌 수조권을 지급.
전시과 제도가 마련되는 과정.
전시과 제도는 태도 왕건이 개국공신들에게 지급한 역분전에 모태를 두고 있다. 농공행상의 성격을 띔. 5대 경종때 전시과란 이름으로 처음 실시 이걸 시정 전시과라 함. 이것의 핵심은 4대 광종 때 마련된 자단비녹이라는 공복과 인품을 기준으로 전시과를 지급. 그리고 전현직관료에게 지급함. 기에 시정 전시과. 그런데 인품은 다소 자의적인 요소를 띔. 목종 때 개정 전시과에서는 인품을 배제하고 관품을 기준으로 18과로 나누어 지급. 이때 군인전시과 시행. 그리고 다음 문종의 경정 전시과로 고침. 경정 전시과는 직상관에 주었던 수조지를 현직관에에감 지급, 무관에 대한 대우 향상, 공음전 지급, 한외과 폐지, 무산계 전시와 별사전 도입. 그전보다 전시과 제도를 보다 정밀하게 정리했다는 의미. 무산계는?
지리업이나 승직자에게 지급한 것을 별사전.
지급대상, 결수가 점차 줄고 있다----
(토지)전시과의 종류:
과전: 문무 관리(18관등)
한인전-하급관리 자제들에게 지급한 땅
구분전:하급관리와 군인의 유가족
공음전:5품 이상의 고위 관리들이 과전과 별도로 공음전을 따로 받음. 죽거나 퇴직하면 과전은 반납, 공음전은 세습 가능, 이게 고려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
군인전-세습 군인(직업 군인)
외역전:향리
내장전-왕실경비
공해전-중앙과 지방의 관청 경비.
공음전, 군인전, 외역전은 세습 가능
민전-매매. 상속. 임대 등이 가능한 사유지. 고려시대에는 널리 분포.
녹과전-무신 정변 이후 전시과 체제 붕괴. 원종(1271) 경기 8현의 땅을 문무관리들에게 지급.
농장확대-무신 정변 이후 권력자들에 의해 대토지 발달, 원 간섭기 이후 권문세족의 대농장이 심각한 수준. 농장이 확대된 경로는 개간권(사패권)을 활용해서 넓은 농장을 확대해 나감.
귀족과 농민의 경제 생활
농업의 발달
귀족:과전, 공음전, 녹봉, 사유지, 외거노비의 신공 등
농업기술-소를 이용한 깊이갈이 일반화가 고려 시대.시비법(녹비, 퇴비) 발달로 휴경지 감소.
고려시대는 시비법 발달로 휴경지 감소하고 상경지 증가. 고려시대 대표하는 시비법
-(시비법이 발달하면서 휴한농법이 소멸하고 연작 상경화가 확립되었다는 조선 초기 설명)은 녹비법과 퇴비법. 퇴비는 똥오줌. 녹비는 콩과잡물을 갈아엎어서 유기질 비료로 쓰는 것.
2년3작(윤작법) 같은 땅에 조보리콩을 돌려짓기 하는 것. 시작된 건 고려시대이고 널리 보편화 된 건 조선 초.
모내기법 도입은 중국의 강남 논법, 중국은 북송 시대 10세기 무렵에 이앙법이 널리 보편화됨 우리나라는 고려에 전래. 도입되었다고 하면 고려말, 남부지방에서 보급된건 조선 전기, 널리 확대된 건 조선 후기.
목화 도입은 고려말 문익점. 널리 확대된 건 조선 전기.
농상집요는 고려말, 이암이란 고려 학자가 원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들여와 소개함. 이는 화북 지방의 선진농법을 소개하고 있는 책. 조선초를 대표하는 농서는 세종의 명으로 만든 농사직설, 성종 때는 강희맹이 경기도 시흥 지방 농법 정리 ‘금양 잡녹’.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농서는 ‘농가집성’ ‘색경’‘삼림경제’ ‘임원경제’‘과농소초-박지원’‘해동농서’
대표적인 건 농사직설, 해동농서, 농가집성
산업활동
수공업-고려 전기는 관청수공업(관청에 출근해서 만드는 것, 수공업자를 관청에 소속시킴) 중심에 소 수공업(所, 향소부곡할 때 소) 은이 나는 곳은 은소, 철이나는 곳은 철소 등 수공업 베품은 먹, 실 등 금은철구리 등의 광산물과 기와, 먹, 자기 등을 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종사하던 거. 소 수공업은 고려말의 독특한 특징. 후기는 사원수공업(기와. 모시. 삼베, 술, 소금 등을 사찰에 소속된 노비들이 생산해서 시장에 판매하는 것)과 민간수공업이 발달했다.
금은철구리는 소수공업/ 모시삼베술소금기와는 사원수공업
상업은 시전상업 중심, 고려는 개성, 조선은 한양.
시전:개경, 관청과 귀족들이 이용
도성 안에 시전 거리가 있는 것. 시전은 관허 상인(관의 허락을 받고 지정해준 구역에서 물건을 파는 것) 국가에서 필요한 물품이나 귀족들이 필요한 물품은 시전에서 조달.
관영상점은 고려만의 특징. 개경이나 서경이나 동경에 있음. 서적점. 주점, 다점, 등 설치.
벽란도(국제무역항)
은병
경시서는 시전의 상인 감독, 나중에 조선시대 평시서로 바뀜. 세조 이후에 평시서로.
소금전매제는 원의 제도를 도입한 것. 목적이 국가에서 전매함으로 재정확보 목적.
화폐-삼국이나 통일신라에는 중국 화폐를 들여와 씀. 일반 거래는 곡식. 베, 옷감 등을 썼고.
고려 초 6대 성종 때 건원중보라는 철전 화폐 만들어 18000꾸러미 썼으나 실패. 민간거래에서는 곡식 등 함께 써도 좋다고 함. 그러다 숙종 동생 의천이 송에 몰래 유학하고 온 적이 있음. 의천이 불교 공부하러 송에 다녀옴. 송은 상업 경제 엄청 발달하던 시대. 그래서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이 만들어짐. 여러 종류의 화폐가 만들어짐. 숙종 6년과 7년 1101년과 1102년에 해동통보, 삼한통보, 활구 등 유통되었지만 널리 유통되지는 않음.
농업중심의 자급자족 구조여서 화폐 유통은 저조했던 것.
고려말 공양왕 때 저화라는 지폐가 만들어지기도 함. 저화는 고려말 공양왕 조선 초 태종 때.
보
보는 기금을 모아 기금의 이자를 가지고 사업을 벌리는 거.
제위보는 4대 광종 때 빈민구제를 목적으로 설치.
팔관보(팔관회 경비 마련), 학보(국자감 학생을 위한 보), 광학보(승려들의 장학기금 위한 보), 경보(불경 간행 위한 보) 등
교역로의 변화
우리가 수입한 건 비단, 약재. 서적, 자기-귀족들...
거란과의 교역 물품은 은.모피.말 수입. 농기구, 포목, 곡식은 수출.
교역로의 변화 북로에서 남조
벽란도에서 덩저우로...
11세기 이후 문종 이후 벽란도에서 밍저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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