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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인문학)/모든것의 역사

고려 왕조의 멸망 과정

by roo9 2021. 8. 26.

고려 왕조의 멸망

 

명의 철령위 요구, 명이 원을 쫓아냄. 명이 고려의 친원적인 태도를 문제삼아 철령이북의 땅을 직할령으로 삼겠다고함. 고려 최고 권력자 최영 주도로 요동 정벌 추진. 이성계와 사대부는 4가지 이유로 반대.

 

그럼에도 출정을 하게 됨. 우왕과 최영 장군은 평양에 남고 출병은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하기로 함. 그러나 폭우가 계속되자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최영 제거하고 우왕 끌어내고 창왕 올렸다가 폐가 입진.

 

 그러나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창왕마저 폐위. 그리고 먼 왕손 왕료를 데려다 세우는 데 그가 공양왕임.

 

삼군도총제부-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일파가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지휘부, 이게 나중 조선초에 의흥 삼군부로 계승됨.

 

 

이성계와 혁명파 사대부는 대규모 전제개혁 추진. 전국적인 양전사업 추진. 1391년 과전법이란 전제개혁 단행. 1392년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제거, 이성계가 새로운 왕으로 추대. 명으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부여받고 창업.

 

 

선죽교

 

새로운 세력의 등장

신진사대부-유학을 공부한 학자, 는 관리

유학을 공부한 학자가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되면 사대부라 함. 학자 출신 관리.

사대부는 고려의 귀족과 성향이 뚜렷이 구별됨. 능문능리-문학적 능력도 있으면서 행정 실무도 밝았다고 함. 이들은 지방의 향리 출신이나 한미한 가문 출신이 많음. 원 간섭기에 들어온 성리학을 사상적으로 수용. 중소지지기반 가지고 있는게 대다수. 이들은 사원의 폐단을 날카롭게 비판. 나중에 온건파와 혁명파로 분화. 온건파는 고려 왕조를 그대로 지키자 주장한 이들은 정몽주, 길재였고 혁명파는 정도전, 조준, 남은이 핵심 인물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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