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 잉그리드 버그만이 있다면 미국에는 캐서린 헵번이 있다. 미국을 대표한 위대한 배우 캐서린 헵번의 이름 뒤엔 위대한과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리고 매니시 룩의 창시자란 말도 있다.
1930년대 미국 최고의 배우 캐서린 헵번 스토리
1907년 5월 12일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난 캐서린 헵번은 1930년대 뛰어난 아름다움과 재치 그리고 다소 괴팍한 캐릭터로 헐리우스 스타가 되었다. 4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2003년 자택에서 사망했다.
캐서린 헵번의 어린 시절
캐서린 헵번의 부모는 부유하고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엄마는 참정권 운동을 한 박사였고 아버지는 성병 예방을 대중에게 교육한 비뇨기과 의사였다. 캐서린이 매우 자유롭고 독특한 성격을 지닌 것은 온전히 부모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오빠가 집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한 이후 행복한 가정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부모는 좌절했고 캐서린은 극도로 정신적으로 불안했다.
캐서린 헵번이 스타가 되기까지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필라델피아 인근의 대학에 다니면서 연기에 푹 빠진 캐서린은 1928년 역사학 학위를 받고 졸업 후 몇 년동안 연극 무대 등 고전분투하면서 커리어를 쌓아갔다. 키가 크고 운동 신경이 발달하여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고 한다. 헵번은 RKO 소속사와 계약을 하고 ‘모닝 글로리’에서의 연기로 첫 번째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얼마 후에는 작은 아씨들의 조를 연기해 큰 반응을 얻었고 헵번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뒤를 잇는 키가 크고 지적인 배우로,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 반열에 오른다.
캐서린 헵번에 관한 각종 구설수
매력적이고 개성강한 캐서린 헵번의 파격적인 태도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점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헵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패션인 바지를 즐겨입는다거나, 골프, 테니스, 등 활동적인 운동도 즐겼고 언행에 거침이 없고 지나치게 똑똑하고 지나치게 당당한 캐릭터? 그래서 항간에는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다고 남성편력이 없던 건 아니다. 결혼도 한번 했고 연애도 많이 했다. 스테이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녀의 엄청난 매력과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는 지나치게 자기 주장도 강하다 못해 괴팍한 캐서린 헵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손절 모드로 돌아섰다. 그녀는 항상 화장을 하지 않았고 인터뷰를 하거나 언론의 관심을 받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그녀의 지론은 모든 규칙을 지키면 모든 재미가 없어진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평생 동안 언론의 관심과 명성을 싫어했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게 목적이었던 것 같지도 않고. 대중의 사인 요청도 피해 “우리가 널 만들었어” 하는 원망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기는 독보적이었다.
소속사와 결별하고 나름의 행보로 명성을 이어가던 캐서린 헵번에게 인생의 중요한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였는데 이 둘은 9편의 영화를 함께 찍었고 서로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몸이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아내와 별거중이었음에도 이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27년 동안 캐서린과 은밀한 관계는 지속했다. 영화계에서 이 두 사람은 충분한 존경을 받았기에 공식적인 기사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캐서린의 사랑과 죽음
1967년 트레이시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을 발견한 것은 헵번이었지만 얼마 동안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면 그의 아내와 자식이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캐서린은 그의 장례식도 참석하지 않았고 장례식 이틀 후 부인에게 조의를 표하러 갔다고 한다. 경이로운 배우다.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사이에는 오에겐자부로의 소설 개인적인 체험이 묻어 있다. 트레이시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는 청각장애를 앓았고, 부인은 처음에 이 사실을 숨겼다가 트레이시가 나중에 알게 된 후 술과 여자를 만나러 다녔다. 그가 만난 여자 중에는 잉그리드 버그만도 있었다. 그러다가 캐서린 헵번을 만난 트레이시, 화장도 안 하고 바지만 입고 레즈비언이란 소문까지 있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을리가 없다. 그러나 둘은 만나면 편안했다. 둘은 오랜 방황을 멈추고 비로소 정착했다.
캐서린 헵번은 그를 보며 연민을 느낀 것 같고 트레이시는 정서적 안정을 느낀 것 같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이혼만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살다가, 사랑하다가 트레이시는 67세에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고 캐서린 헵번은 장수하다 2003년 6월 29일, 96세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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