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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프랑스 패션의 역사 훑어보기

by roo9 2021. 7. 1.

 

프랑스하면 패션과 여배우들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뷰티와 패션과 밀접한 나라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시작된 패션의 역사라고 해야 하나 무수히 많은 영화 속, 혹은 각인된 마리앙트와네트와 비슷한 이미지가 연상된다.

 

 

확실히 마리앙투와네트 왕비는 프랑스의 뷰티 패션 역사에 기여를 많이했다. 로즈 베르텡이라는 디자이너를 통해 유행을 주도하였고 패션 잡지가 나오는데 일조하고. 그런 전통으로 나폴레옹 3세 부인 외제니 황후는 왕실에서 패션 리더로 통하며 모든 유행의 중심인 잇 걸로 유명했고 이것이 더 나아가 파리는 유행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프랑스인은 열정과 미에 대한 관심이 유독 남달랐는데 전부 왕실 공으로 돌려야 할지 탓으로 돌려야 할지는 모르겠다. 왕실에서 처음으로 지금의 패션쇼 원형을 만들어 냈고 당시 문화예술가들은 미와 패션에 대한 극찬을 연발했고 등등 멋을 내고, 화려하게 옷을 입는 현상이 부와 권위를 상징했던 만큼 열성적이었다. 마치 영끌해서 집 사는 국내 현상처럼 코르셋을 조이고 s라인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1900년대 초반까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 왕실 만큼은 부강했고 유별난 패션에 대한 집착으로 유럽 사회 패션을 주도했고 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고정 관념을 탈피하여 새로운 유행을 창조한다. 얼굴에 밀가루를 잔뜩 바른 기괴한 유행을 끝내고 어쩐일인지 햇볕에 그을린 피부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아르데코 스타일의 영향이겠지만 코르셋을 벗고 실루엣은 심플해졌다.

 

 

그야말로 탈코현상이 일어나면서 여성들은 짧은 보브 커트에 벙거지의 전신 클로셰를 쓰는 유행이 전역을 강타했다. 무릎 위로 올라간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한결 심플하고 자유로운, 그래서 말괄량이같은 플래퍼 스타일을 주도하였는데 소위 샤넬 라인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샤넬은 진실로 바람직한 페미니스트였다. 요즘처럼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엉망진창 스타일을 고수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머리를 짧게 자르고 코르셋을 벗고 스커트 길이가 짧은 게 이전 세대보다 예쁘다는 걸 각인시켜 주면서 여성 해방을 외쳤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니스커트를 만든 폴 푸아레와 가브리엘 샤넬의 신개념 패션 주도로 인해 1920년 이후에는 단순과 실용성을 강조한 스타일이 유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여성들이 실용적인 스타일에 질린 것인지 또 한번 변덕을 부리게 되면서 크리스챤 디올이 꽃봉오리에서 영감을 얻은 뉴룩을 창조한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하여 개미처럼 보이는 룩이라고 해야 할지. 여성을 더욱 여성스럽고 우아하게 보이는 뉴룩 스타일은 대성공이었고 디올의 뒤를 이어 물려받은 잘생기고 능력있는 이십대의 청년 입생로랑은 샤넬이 그랬듯이, 그러나 샤넬이 남성복의 편안한 스타일만 차용했다면 입생로랑은 남성 정장을 여성 옷으로 승화했다. 1966년 오늘날까지 유행하는 바지 정장을 정착하게 하는데 일조한다. 

 

 

프랑스 파리의 현재 패션계는 조상이 일궈놓은 스타일에 명성을 더해 꿀만 열심히 빨고 있다. 물론 패션뿐만이 아니라 프랑스는 역사가 자산이 되어 조상이 지은 건축물이며 가방, 시계 등등 모든 것이 명품으로 인정받으며 전세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가 패션의 중심지로 인정받을 수 있던 것은 프랑스인의 장신 정신, 그것도 현대적 감각과 잘 매칭한 장인 정신으로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창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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