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왕건의 장남 2대 혜종이 즉위 이야기
왕건의 첫 번째 부인은 정주 이씨인데 아이를 낳지 못해 두 번째 부인은 나주 호족 오달연의 딸 오씨를 맞이함. 왕건하고 소금 호족이던 오달연의 딸과 정략 결혼해서 낳은 게 돗자리 태자 혜종. 왕건이 촌에 있는 나주 오씨와 애를 낳고 싶지 않아서 체외 사정을 했는데 여자는 애를 낳고 싶어 돗자리에 묻어 있는 정액을 훔쳐 임신을 해서 낳았더니 이마에 돗자리 무늬가 있어서 애 이름이 돗자리 태자로 불렸다고 함. 이 이야기가 왕조 실록에 실린 이유는 2대 혜종의 실록은 3대 정종때 편간 되었을 확률이 높음.
정종은 왕건의 3번째 부인인 충주 유씨 최고의 군사 호족 가문. 아마 그 집안에서 혜종의 출신이 비천하다는 풍문을 실록에 버젓이 실어 놓은 것. 혜종은 외가집 기반이 약했던 듯. 4년만에 병사했다는데 독살설이 유독.
당대 충주 지방은 가장 요충지. 최고의 호족 가문이 유금달. 그의 딸이 왕건 세 번째 부인. 아들 넷, 딸 하나를 낳음. 장남은 일찍 죽고 사실상 장자가 두 번째 왕자 왕료, 3대 정종임. 정종은 왕규의 난을 진압하고 서경천도를 계획.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서 광군 30만을 조직함. 그러나 왕료도 재위 5년만인 나이 삼십대 초반에 요절함
달의 여인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줘서 그동안 광종 이미지의 장혁보다 더 강한 인상을 준 이준기. 수양대군하면 이정재가 떠오르듯 이제 고려 광종하면 자연스럽게 이준기가 떠오름. 아무튼 고려 시대하면 가장 대표적인 왕이 바로 4대 광종. 광종은 왕권 강화에 힘쓰고 노비안검법을 실행함(노비환천법은 노비안검법의 반대말. 노비환천법은 주인을 고발한 자를 다시 노비로 만듦.). 노비안검법은 노비를 심사해서 양인이었는데 억울하게 노비된 자를 환원시켜 주는 법이었음. 이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왕권 강화에 있었다. 호족이나 귀족들의 군사적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함. 또한 최초로 관리선발제인 과거 실시.
공복제도 마련. 자단비녹. 이걸 통해서 관리들의 위계를 바로 잡으려 함. 4대 광종은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광덕, 준풍과 같은 연호를 씀. 왕건이 쓴 연호는 천수.
주현공부법은 주와 현에서 공납이나 부역에 관해서 내는 규정을 담은 것이 주현공부법임. 4대 광종은 일련의 정치 개혁을 통해서 광종 중기가 되면 왕권이 크게 강화가 됨. 왕권 강화의 걸림돌이 되는 귀족이나 대호족을 축출. 그중 평산 박씨 박수경만 남음. 박수경, 박수남 형제. 이들 세력을 약화 시키기 위해 비리 혐의로 박수경 아들 3형제를 다 죽여버림. 4대 광종 때 생긴 일.
광종 다음 5대 경종. 경종 재위 기간은 무척 짧다. 경종은 전시과 제도를 마련했다. 경종이 일찍 죽자 실락의 추대를 받아 성종이 즉위함. 성종이 즉위하면서 자신 앞에 있는 다섯 임금의 잘잘못을 따지고 혁신을 얘기한 최승로의 시무 28조 탄생. 그중에서 태조 왕건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4대 광종을 신랄하게 비판함. 최승로는 6두품 출신의 유학자. 유학자의 관점에서 광종처럼 전제, 독재, 공포 정치를 한 군주를 높이 평가하지 않음. 최승로는 성종에게 시무 28조 건의하고 성종으로부터 채택받음.
시무 28조 핵심 정리
7조, 지방관 파견 건의(중앙집권강화)
태조께서 창업을 하셨을 때는 너무 번다해서 지방에서 향리 호족이 나라 이름을 빙자해서 백성들을 지멋대로 뜯어 먹음. 그래서 12목이 설치되고 지방관 파견 됨. 고려 시대는 처음으로 생긴 일.
11조, 맹목적인 중국 모방 비판, 의복과 검안은 구태여 중국 것을 본받을 필요가 없다. 예의는 마땅히 중국 것을 본받지만... 자주적, 주체적 개혁 주장.
13조, 연등회와 팔관회를 줄여서 백성들의 힘을 펴게 하라. 폐지 건의.
19조, 4대 광종 때 희생된 삼한 공신의 자손들을 재등용하길 청함.
20조, 개인의 종교 생활은 어느 종교든 상관없지만 나라는 유교 정치 이념을 건의.
왕권강화와 중앙집권 강화가 같은 말은 아님...왕권강화는 왕과 귀족들간의 세력 다툼이 포인트. 유학자 입장에서는 전제왕권 비판할 수밖에 없고 귀족들과 함께 나라를 읶르어 주길 바람.
향리제도
6대 성종때 최승로의 시무 28조의 건의를 받아들여 2성6부의 중앙관제 뼈대 만들어짐. 12목에 지방관이 파견되면서 지방관제 정리. 향리 제도 마련.
고려 초에는 향리들이 당대등, 대등 식으로 불림, 6대 성종 때 향리의 제일 아랫등급 후단사, 상등급 호장, 두 번째는 부호장, 네 번재는 호정, 다섯 번째는 부호정 등 향리제도 정리한 게 6대 성종. 향리의 군현마다 향리의 숫자와 복장을 정리했다고 하면 8대 현종.
지방 호족들을 향리제도로 정비한 것은 6대 성종. 성종은 국자감 정리. 12목에 경학박사 의학박사 파견. 귀족들이 노비안검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그들을 다시 찾아내서 다시 노비로 만들었던 것.
고려의 중앙정치기구
고려의 중앙정치기구는 뼈대가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이를 2성이라 함. 상서성 밑에 6부가 있음. 이병호형예공-부 이는 당나라 3성 6부 관제를 베낀 것. 고려 실정에 맞게 변형해서 쓰고 있음. 중서성과 문하성을 통일해서 중서문하성으로 씀.
최고관부는 중서문하성 그곳 장관은 문하시중. 그리고 나서 도병마사와 식목도감. 이 둘은 중국의 관제가 아닌 해동의 관제다. 귀족들이 모여 도병마사는 국방문제, 식목도감은 법제와 격식을 다루는 회의 기구, 이는 귀족들의 합자 회의 기구. 중국은 이런 전통이 없음. 우리나라는 신라의 화백회의 등 이런 전통이 있었고 이것이 고려에 와서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으로 변한 것. 중추원은 역할이 2개. 1품 2품 이상의 고관을 추밀이라 함. 추밀은 군사 기밀을 다룸. 중추원의 3품 관리는 6명인데 승선이라 부름. 좌승선, 우승선 등 왕명을 출납한다. 임금의 비서들임.
어사대는 관리감찰기구. 중국의 한 나라때부터 있던 제도. 조선의 삼사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지만 고려의 삼사는 그냥 삼사. 화폐와 곡식의 출납 담당하는 제정기구.
고려 관제의 뼈대는 2성 6부. 당나라 3성 6부 관제 영향을 받은 것.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은 독자적 제도. 중추원과 삼사는 송나라 관제를 모방한 것.
한림원, 춘추관, 보문각 등
춘추관은 역사 편찬, 보문각은 서적 관리, 한림원은 주로 임금의 명령서(=교서)를 작성 관리하는 곳, 대표적 학술 기관.
중서문하성-중서문하성의 2품 이상의 고위 관원들이 몇 자리 있는데 그들을 통틀어서 중서문하성 재신이라 함. 중서문하성의 3품 이하의 중하급 관원 십여자리를 통칭해서 낭사라고 함.
중서문하성의 고위 관원인 재신과 중추원의 고위 관원을 추밀이라 하고 그 밑을 승선.
재신과 추밀들이 마주 앉아 있는 데 합좌라고 함.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의 일원은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들이 모여서 이를 ‘재추합좌기구’라고 함. 우리 나라 독자적 관제.
도병마사는 원 간섭기 충렬왕때 도평의사사로 바뀜, 줄여서 도당이라고 함.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은 임시기구. 근데 나중에 도평의사사는 최고 상설 정무 기구, 항상 열려서 나라의 정무 기구 역할을 하게 됨. 후기에 도평의사사가 왕권약화의 주범. 조선 초에 이게 의정부로 개칭됨.
대간제도
대간은 대는 어사대, 간은 간쟁, 대간은 어사대와 중서문하성 낭사를 합쳐서 대간이라고 함.(간쟁, 봉박, 서경)
대간은 간쟁(전하 아니되옵니다), 그리고 봉박(임금의 명령이 부당할 때 되돌려 보내는 거 즉 거부권) 서경(관리 임명시나 법적필시에 부당하다 싶을 때 문제 제기 할 수 있다.)
이건 권력 독점, 왕권 강화가 아닌 왕권 견제. 이는 유교 정치 사상과 관련이 있다. 대간 제도가 있던 나라는 고려와 조선. 고려는 대체로 겸직이 많았음. 중서 문하성의 문하시중을 맡으면서 2부 상서를 겸하다던지가 빈번하게 있던 편.
고려의 지방제도
고려 초에는 지방을 호족들에게 위임하다 6대 성종 때 최승로가 건의하자 12목이 설치. 최초의 지방관 파견이 됨. 고려 지방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원적
5도, 양계, 임금이 살고 있는 궁궐을 경, 경과 주변을 경기라고 함. 고려는 5도 양계는 분리되지 않는 경기가 있음.
고려 제1수도는 개경, 2수도는 서경, 3수도는 동경(경주)였는데 문종 이후 동경에서 남경으로 옮겨짐.-풍수지리설과 관련
그밑에 4도호부, 8목 그리고 주.현.진을 설치.
도호부가 설치된 곳은 군사상 중요한 것, 그렇지 않은 곳엔 목을 설치.
5도의최고는 안찰사, 양계의 최고는 병마사.
5도 밑에는 주, 군, 현을 두었고. 주는 지사 파견, 현에는 현령을 둠.
양계지역은 국방 요충지에 진을 둠. 진의 수령을 진장이라 함.
고려 지방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원적이고 두 번째는 중앙집권이 불안정하다.
그다음 향.소.부곡
주.군.현이 되기에는 여러면에서 부족하여 향.소.부곡이 널리 있었다.
향이나 부곡은 통일신라에도 개념이 있었음. 소는 고려 시대에 생긴 개념. 소는 주로 수공업. 광물 생산과 관련.
관악산에 구리가 남. 봉천동소,
대모산 밑에는 철이 남. 대모철소
소금이 나는 곳은 염소, 금이 나는 곳은 금소, 마을 주민들이 실을 짜면 사소, 먹을 만들면 묵소. 이렇게 소란 행정단위는 고려시대만 있는 행정단위. 소가 나오면 무조건 고려.
향이나 소나 부곡에 살던 사람들은 일반 군현민보다 가혹한 수취 부담. 향소부곡 출신은 관직 진출 제한. 이들은 5품 이상 올라갈 수 없도록 함. 이들은 하층양민이라 부름.
고려는 속군 속현이 상당히 널리 있었음. 이걸 예종 때부터 감무를 속군, 속현에 파견. 이게 나중에 조선시대에 현령 말고 현감제도의 유래.
고려의 향리와 조선의 향리 중 고려의 향리가 더 사회적 지위가 높았음. 향리는 과거에도 응시 가능, 합격하면 관직에 오를 수도 있는 나름 유력한 계층. 고려의 향리는 외역전이란 수조지를 따로 지급받았음.
안찰사 조선의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 파워. 임기가 1년 300일, 휘하에 군.현을 지휘 감독하는 막강 권력. 그러나 고려의 안찰사는 주.군.현의(품계 3품) 6품. 임기도 6개월. 거기다 고려의 안찰사는 상설 행정기관이 없음. 오늘날의 도청 같은... 자기가 업무를 맡는 상설기구가 없음. 개경에서 서류로 업무를 보거나 자신의 맡은 임지를 순찰하는 업무 정도. 그것이 고려의 안찰사.
고려의 군사제도
고려의 군사제도는 이원적
중앙군은 2군 6위, 2군은 용호군와 웅량군, 이들은 임금의 직속 친위 군사 조직.
천명 단위를 령이라고 함./ 용호군은 1령, 웅량군은 2령, 임금의 친병들
6위는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가 있음 이들은 중앙 6위의 주력 부대. 수도 경비와 국경 방어 담당하는 중앙군 중의 중앙군. 금오위는 경찰, 천우위는 의장, 감문위는 궁성수비.
2군이 3령, 6위가 42령.
2군6위는 군인전을 지급받고 있는 세습군인(직업군인)이 중앙군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
고려는 무과가 필요 없는 나라, 국초부터 군호가 있었음.
지방군은 5도 지역은 주현군, 양계 지역은 주진군. 주현군이나 주진군은 16세 이상의 양인 남자들은 군역 의무. 일반 농민에 속함.
중방-2군6위의 지휘관을 일컬음. 별4개는 상장군, 별3개 대장군 별 장군 등 주요 지휘관들이 모이는 회의가 중방.
첨설직-공민왕때 남발, 전시과 체제가 무너진 상태라 홍건적이나 왜구를 격퇴하는데 장수들이 공을 세움.장수들 밑에서 분전한 용사들에게 뭘 줘야 하는데 이들에게 첨설직 일종의 명예직을 남발함. 나중에 조선이 개국된 뒤 첨설직을 줄여나감. 고려 말의 첨설직의 남발이 있었다는 것. 이들이 나중에 준 관료, 준 지배층으로 역할을 함. 이들 중 일부는 조선이 개창되면서 양반 지배층으로 편입되거나 낙오,탈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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