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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인문학)/모든것의 역사

한국 중세사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과정

by roo9 2021. 8. 17.

 

국사는 고려 475년을 중세로 본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라는 경상도 안쪽 소백산맥 안쪽 지방정권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지방 곳곳에서 호족이 성장하는 데 독자적인 정권 수립하는 단계까지 감.

 

그래서 지금의 완산 전주지역의 견훤이 백제(후백제)라는 나라를 세움.

 

  이듬해 901년 송악에다 궁예(신라 왕조 후예)가 후고구려 건국 몇 년 뒤 철원으로 천도하고 나라 이름을 마진이라고 했다가 태봉으로 바꿈. 궁예는 부하 장수나 신하 장수 여러 명을 죽임. 부인 및 아들도 죽임. 미륵신앙을 빌미로다.. 그래서 민심이반이 와서 궁예는 축출, 이어서 된 새로운 왕이 40세의 청년장수 왕건

 

 

 

 

 

왕건 집안은 예성강 일대 송악 지대에서 대대로 호족 가문 출신이었음. 아버지 용건 때부터 해상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한 집안 이라고 한다. 왕건의 아버지 용건 또는 왕륭은 자기 아들을 데리고 궁예에게 기부를 함. 그래서 그 밑에서 벼슬을 하게 됨20대 청년이던 왕건은 궁예의 명으로 후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당시 이름 금성이던 나주 지방을 공격 하였다. 후백제 견훤이 나주 지방을 공격하자 나주 호족들이 궁예에게 도움을 청했고 궁예가 왕건에게 군사를 보낸 듯, 그 뒤로 왕건은 908년과 911년에 궁예의 명으로 나주를 방어해서 국무총리 급 높은 벼슬을 차지하였다고.

 

 

 

 

 나중에 부하 장군들이 추대를 해서 918년에 왕이 된 것임.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하고 이듬해 919년에 송악으로 도읍을 옮김. 나중에 송악이 고려 450년간의 수도 개경이 되는 것임. 936년 후백제 멸망할 때까지 고려 왕건과 치열한 체제 경쟁이 벌어짐. 여기서 외교 정책으로 왕건은 신라를 적극적으로 도우고 후백제와 군사적으로 맞섬. 처음에는 후백제 견훤이 더 우세했다. 후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땅이 충청도와 전라도 곡창 지대여서 경제력이 풍부 군사력이 압도적이었음. 927년 공산전투가 그를 반증함.

 

 

 

  후백제 견훤이 군사 1만을 이끌고 신라로 치고 들어감. 신라 마지막 왕은 56대 경순왕 55대왕은 경애왕 당시 포석정에서 파티 중이었음. 후백제군이 포석정에 있는 경애왕을 죽임.

 

 

 

그리고 신라 왕족이던 김부를 꼭두각시로 올림. 그가 경순왕 김부. 신라 조정은 고려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왕건이 5천을 이끌고 신라 지역으로 가고 있었음. 후백제 견훤은 이를 눈치채고 대구 팔공산 인근에서 맞딱뜨림. 왕건의 군대가 대패를 하고 팔공산 기슭에 포위가 됨.

 

 

 

이때 신숭겸 장군과 김락 장군이 등장. 신숭겸 장군은 왕건의 오른팔 중 오른팔. 왕건의 황금 갑옷을 입고 후백제 진영으로 돌파 시도. 두 장군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은 몰살. 죽이고 나니 왕건이 아니었음. 그동안 왕건은 다른 곳으로 도망감. 왕건도 부하 대신 자기가 산 것이 부끄럽고 아파서 통한의 눈물을 흘림. 그래서 나중에 신숭겸 장군의 목을 순금으로 만들어줌. 그 집안이 반역을 하지 않는 한 최고의 공신 가문으로 대접해주라고 함.

 

 

 

춘천에 있는 신숭겸 장군 묘

 

            

 

 

 

  고려 왕건이 후백제에게 대패하고 3년뒤에 설욕함. 지금의 안동에 해당하는 고창 전투. 고창 전투는 차전 놀이와도 관련이 있다고 함. 당시 안동 지방은 경북 지방의 요충지였음. 이곳을 둘러싸고 후백제 군과 고려군이 둘러싸고 전쟁을 했는데 호족들이 왕건 편을 든 듯.

 

 

 

유금필이라는 용장이 있는데 그의 활약으로 왕건이 고창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 이 전투를 기점으로 왕건 대세론이 힘을 얻음. 그러니 그 강력한 후백제도 내분이 생김.

견훤의 본처에겐 아들이 셋, 신검 용검 양검. 둘째 부인에겐 금강태자가 있음. 본처는 죽고 둘째 부인의 베갯잎 송사로 후백제의 후사가 금강태자가 됨.

 

 

 

그러자 본처 아들 셋이 빡침. 그래서 반란을 일으켜서 아버지를 금산사에 유폐함. 그래서 신검이 후백제의 2대왕이 됨. 그러니까 당대 영웅이던 견훤이 아들에게 쫓겨나 유폐되어 빡치고 결국 도망을 감. 금산사에서 감시를 피해서 도망을 가는데 그뭄 날에 병사들의 감시를 피해 홀딱 벗고 피신. 왕건에게 기부를 함. 왕건은 웬떡이냐 싶어서 양아버지로 견훤을 대접.

 

 

 

이 무렵에 천년 신라도 버틸 수 없게 되자 경순왕 김부가 나라를 갖다 바침. 그러자 왕건은 9만 대군을 일으킴.

 

지금의 경북 선산(당시 지명 일이천) 후백제 신검의 군대와 왕건의 군대가 싸워 굴복시킴. 그래서 후삼국 통일하게 됨.

 

후백제의 도읍지는 완산주, 지금의 전주

고려의 도읍지는 철원에서 송악으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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