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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1910년대 요부 메이크업 창시자 테다 바라

by roo9 2022. 1. 20.

테다 바라는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최초의 ‘팜파탈’ 이미지이자, 1910년대 요부 메이크업을 창조한 문화 아이콘이었다. 그녀의 짙은 스모키 화장, 일자 눈썹, 과감한 노출 의상은 지금도 뷰티와 패션의 원형으로 회자된다. 스타 파워를 위한 신화 창조와 함께, 대중문화와 도덕적 검열 사이의 치열한 충돌이 그녀의 삶을 관통했다.

 

 


1. 테다 바라 신화의 출발

 1890년 7월 29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테오도시아 굿맨(Theodosia Goodman), 훗날의 **테다 바라(Theda Bara)**는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18세에 뉴욕으로 이주해 배우로서 무명의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1915년, 프랭크 파웰 감독의 《A Fool There Was》에 출연하며 단박에 할리우드의 신성이 되었다. 당시 30세였던 테다 바라가 연기한 캐릭터는 순진한 남성을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파탈’ 이미지. 이 배역은 단지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헐리우드 역사상 최초의 요부 캐릭터를 대중적 이미지로 정착시킨 기점이었다.

A fool there was 영화 포스터와 극중 테다바라 이미지

 

 

 

2. 클레오파트라 역과 할리우드 마케팅

 1917년 영화사 폭스는 테다 바라에게 클레오파트라 역할을 맡기면서 그녀의 출신 배경마저 ‘마케팅 도구’로 활용했다. 아랍 혈통의 프랑스인이며 프랑스 교육을 받았다는 설정은 대중을 현혹시키는 완전한 허구였다. 심지어 “프랑스 여배우와 이탈리아 조각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설정까지 등장했다. 당시에는 이런 신화적 홍보가 스타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국적 환상이 바로 테다 바라의 ‘브랜드’였던 셈이다.

 

3. 요부 메이크업의 탄생

테다 바라가 창조한 1910년대 요부 메이크업은 뷰티 역사상 선구적인 사건이다. 그녀의 시그니처는 다음과 같다:

 

클레오 파트라 속 요부 메이크업을 연출한 테다바라

  • 짙고 해비한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
  • 가는 일자 눈썹
  • 과감한 노출과 니플을 강조한 의상
  • 루즈하고 유혹적인 입술

이 메이크업 스타일은 후대의 마릴린 먼로, 마돈나, 고딕 스타일 패션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섹시함과 파괴성을 동시에 내포한 뷰티 코드로서, 테다 바라의 이미지가 여성 주체성을 새롭게 정의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4. 대중의 사랑과 검열의 역슴

 1915년부터 1920년까지 약 5년간 4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테다 바라는 거의 모두 유혹적 요부 역할만을 맡았다. 그로 인해 일부 비평가들로부터는 천박한 캐릭터의 반복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녀는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인기는 그녀의 이름을 딴 음식, 노래, 인형, 화장품이 등장할 정도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어린 딸들의 이름으로도 ‘테다’가 유행했다. 그러나 영화의 지나친 노출과 ‘악마적 여성상’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1930년대부터 검열 규제가 강화되며 테다 바라 스타일의 의상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테다는 점차 대중문화에서 퇴장하게 된다.

 

 

5. 유성 영화와의 결별

 테다 바라는 단 한 편의 유성 영화도 남기지 않았다. 1926년 45분짜리 단편을 마지막으로 은퇴했고, 이후 조용히 살아갔다. 1921년 감독 찰스 브래빈(Charles Brabin)과 결혼했으며, 자녀는 없었다. 1955년 4월 7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신비한 이미지였지만, 죽음 이후에도 더욱 신화적인 존재로 남는다. 특히 1937년 폭스 영화사에 발생한 화재로 대부분의 필름이 소실되었고, 그녀의 대표작 《A Fool There Was》만이 유일하게 현존한다.

 

 

6. 전설로 남은 여성

 테다 바라는 단순한 ‘요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문화적 전환기의 상징이자, 여성이 욕망의 주체가 되는 이미지의 시조격 인물이었다. 이후 수많은 팜파탈 캐릭터와 요부 메이크업은 모두 그녀의 흔적을 밟고 있다. 금기와 열망 사이에서 문화적 아이콘이 된 그녀는, 지금까지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이 오해받고, 가장 빠르게 잊힌 여신’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뷰티, 패션, 이미지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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