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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황정민 영화 신세계 감상 후기

by roo9 2021. 12. 7.

 

페이크와 진심, 충성과 배신, 그리고 인간 본성의 이중성. 영화 ‘신세계’는 단순한 갱스터 무비를 넘어, 정체성의 위기와 선택의 냉혹함을 묘사하는 진한 수컷 냄새의 영화다. 이 글은 ‘신세계’에 대한 감상과 인물 분석을 통해 인간 군상의 본질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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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컷 냄새 가득한 원초적 영화

박훈정 감독의 2013년작 ‘신세계’는 흔히 ‘한국판 도니 브레스코’라 불리며, 홍콩 누아르의 감성과 조직 영화의 본능적 폭력을 절묘하게 담아냈다. 여성 관객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 영화는 단지 폭력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교활함과 본능적인 생존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가 깡패를 미화했다기보다는, 깡패 사회조차 인간적인 정과 배신의 이중성으로 물들어 있다는 점을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 신세계 중 권좌에 앉은 이정재

 수컷 냄새 가득한 영화. 뭐랄까 동물 냄새가 풀풀 풍기는 원초적인 그런 영화가 좋다. 물론 이런 작품들을 두고 깡패 양산 영화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신세계'는 깡패를 영웅화하기보다 전형적인,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남성 영화로 칭해야 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얼마나 경악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페미니스트 여성 감독들이 만든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한다. 인간의 본성이 사악하다고 보질 않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런 영화를 보면 계도를 하기 위함이 아닌, 쉽게 말하면 어리석고 교활하고 잔인하고... 그런 복잡 미묘한 인간사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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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정재의 내면 연기와 정체성의 혼란

'신세계'에서 이정재의 내면 연기는 압권이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정재가 스파이 짓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봐야만 그 진의를 알 수 있다.

 남성 위주의 영화가 그렇듯, 여성은 그냥 눈요기 거리다. 일부 자존심 센 배우들은 이런 영화에 출연하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신인들이 자주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비중 있게 잠시 나왔던 송지효. 송지효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녀는 호감 배우이긴 하나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일단 송지효는 발음부터가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연기에 진지함도, 뭐랄까 고찰하는 것도 없어 보인다. 분명 이 영화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길 수도 있었을 텐데, 단지 모나리자 같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이자성’이라는 캐릭터는 극 내내 갈등과 혼란을 겪는다. 경찰이지만 경찰 같지 않고, 깡패 세계에 깊숙이 녹아들었으면서도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정재의 연기는 억제된 감정, 갈등 속의 침묵, 눈빛의 흔들림으로 이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그는 형사 최민식 앞에서는 복종하는 부하이지만, 정청 앞에서는 점점 형제애에 가까운 관계로 무너진다. 이자성의 정체성 혼란은 결국 극의 중심 갈등이 된다.

3. 황정민의 ‘정청’, 투 머치인가 본질인가

황정민은 많은 이들이 연기를 잘한다고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에게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아마도 너무 잘해서 매력이 없기도 하고, 너무 거칠어서 '투 머치'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너무 적나라할 정도로 연기를 잘해서 그렇다고 치자. '신세계'에서도 초반은 다소 거북할 정도로 그런 느낌이 강했다. 

 황정민을  대단한 배우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가 연기할 때 다른 존재가 아닌 그저 그 캐릭터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정청'이라는 인물이 바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게 황정민식 연기의 매력인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황정민이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건 디테일한 생활 연기의 달인인 정우와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쨌든 황정민의 연기는 점차 관객을 빠져들게 만든다. 그는 연기에 힘이 들어가야 할 때와 뺄 때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배우다. 좋아하진 않지만 존경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우다. 이번 '신세계'에서는 약간 히스 레저 스타일을 모방했던 건지...

4. 영화의 모호한 설정

영화에 관한 해석을 두고 분분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영화를 보는 이들의 묘미일 것이다. 정작 만든 감독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흥하기만 해라, 모드일 테지만. 그래서인지 '신세계'는 초반부터 이경영을 누가 죽였는지도 모호하게 설정해 버리고, 정확하게 어떤 개연성을 가지고 골드문을 치려 하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이미지 위주로 전개한 부분이 있다. 영화 촬영 스타일도 미학적으로 인물의 클로즈업 위주로 많이 다뤘다. 극장에서 봤다면 몰입도가 더했을 것이다.

 

 물론 다소 미진한 부분도 있다. 이정재가 경찰 신분을 감추고 갈등하는 부분은 그렇다고 쳐도, 정확하게 최민식의 목표는 무엇인지, 박성웅도 왜 그렇게 마냥 악하게만 나와야 했는지, 황정민도 왜 그렇게 이정재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고 하지만, 마지막에 나온 부분은 사실 일종의 트릭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기실 이자성과 정청이 동네 돈독한 선후배 사이인 것처럼 묘사했지만, 형사 최민식과 이정재와의 만남이 더 오래 전의 일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그것은 마치 반전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만큼 이정재와 최민식의 친밀함보다는 황정민과의 돈독함을 보여주고 싶기 위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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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상적인 장면들

 누구나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최민식이 "너 화교 맞지?"라고 물었던 부분이다. 이정재가 줄곧 최민식 앞에만 서면 끌려온 강아지처럼 초조해하던 모습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는 권력자의 편견을 가진 눈과, 아무 사심 없이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 황정민과 너무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의무감으로만 똘똘 뭉치며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비밀 경찰들과, 나름 인간적인 정이 있고 멋을 아는(비록 개멋이래도) 조직 사이에서 이자성은 갈등한다. 국적부터가 다소 모호한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현재 상황도 중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관계가 극도로 불안해 보인다.

 

 이미 이자성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 같다. 그는 단지 자신이 소속된 관계에서의 믿음이 깨져버린 상황에 대해서만 불안해했다. 결국 이자성이 경찰임을 알았음에도 스파이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과정을 보여준 정청. 이것은 암묵적인 메시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론은 정청은 그냥 본래가 잔인한 금수 같은 성정을 가진 인물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잔인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인간적인 정 많고 감정에 충실하고 천박하고 잔인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경찰 최민식보다는 깡패 황정민에게 더 친근한 정이 간다. 최민식은 그저 지시만 하고 사람을 그리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도 안 나오는데도 말이다.

6. 깊이 남는 대사들

 죽기 일보 직전, 이자성을 따로 불러 놓고 하는 정청의 말이 인상적이다. 호흡기를 갖다 대려 하자 "너 나 감당할 수 있겠냐"라고 말하며 "독하게 살아. 그래야 네가 살아. 알지?"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정말 '도니 브레스코'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대사가 영화에서 가장 깊게 남는다. 독하게 살아야 내가 사는 세상이 분명하니까.

 이자성은 인과응보식으로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 이러면 완전히 나가리에도 불구하고. 최민식은 뭘 원했던 걸까? 그리고 이자성은 여자에게 다시 돌아갔을까? 왠지 다신 그 집에 발을 안 디딜 것 같은 느낌이다.

다소 진부했던 대사는 "오늘 따라 날씨가 좋지?"와 "죽기엔 좋은 날씨군" 류의 뫼르소 버전이다. 정청이 이자성이 경찰 신분임을 알았음에도 발설하지 않은 건 아무래도 그동안 지켜본 결과 그 잔인한 습성이, 아니 쉽게 말하면 양아치 같은 성향이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죽기 전에 "선택 잘하라"라고 한 것일 수도 있다. "너에겐 양아치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러니 여기서 나처럼 살아." 뭐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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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게 살아야 되는 세상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선악을 논할 그런 스토리는 아니다. 나름의 인과응보도 있긴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놓인 한 인간의 복잡미묘한 갈등과 속고 속이는 사회에서 독하게 살아야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본성, 정체성의 혼란, 충성과 배신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는 이 영화는 잔인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냉혹한 일면을 보여준다. 각자가 꿈꾸던 그들만의 '신세계'를 향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이중첩자를 소재로 다룬 영화 포스팅은 이 글에서 다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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