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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story/뷰티 앤 패션 노하우

1930년대 헐리우드의 악녀 전담 배우이자 전설이 된 베티 데이비스

by roo9 2021. 4. 29.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베티 데이비스는 1908년 4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투 로웰에서 태어났습니다. 눈이 크고 입이 작은 얼굴은 1930년대 미국 사회에서 선호하는 마스크였는데요. 그녀는 극장에서 짧은 경력을 쌓은 후 헐리우드에 진출하여 죽기 전까지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아이콘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베티 데이브스의 성장 배경

 

데이비스의 부모는 그녀가 7살 때 이혼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베티와 그녀의 동생 바바라를 홀로 키웁니다. 그리고 10대 때 베티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쿠싱 아카데미에서 연기 수업을 배웁니다. 이후 뉴욕으로 건너가 연극 무용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옛날인데도 미국에는 연기를 위한 양성소가 체계적으로 발달했다는 것이 놀랍고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 분야를 점령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련의 교육을 마치고 뉴욕에서 연극 부문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1929년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무대에서 기회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해 말 21살의 나이에 코미디 ‘Broken Dishes’에 출연합니다.

 

 

이후 스크린 테스트를 거쳐 헐리우드의 유니버설 픽쳐스와 계약을 맺고 1931년 영화 ‘bad sister’에서 작은 배역을 맡는 것을 시작으로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32년 워너 브라더스로 옮기면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악녀 캐릭터로 뜨기 시작한 그녀

 

 

 

 

 

1934년 서머셋 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천박하고 차가운 웨이트리스인 밀드레드 역을 맡아 첫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릅니다. 이후 그녀가 좋은 반응을 얻은 캐릭터는 이런 식으로 사회부적응자 모드의 심지 굳은 불량 여성 역할 일색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935dangerous’에서 말썽 많은 젊은 여배우 역할로 첫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소속사 등와 일련의 문제를 겪다가 1938년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습니다. 이후 승승장구의 연속이었습니다.

 

 

1949년 워너브라더스와 결별 후에서 베티는 명성을 이어갑니다. 1955년 ‘virgin queen’ 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연기를 훌륭히 해냈고 1961년에는 ’tennessee williams’s the night of the iguana on Broadway’ 으로 활약했는데 점점 작품 캐릭터가 불량에서 공포로 전환하는 분위기로 갑니다. 

 

 

배우로 최고의 인생을 살다 간 베티 데이브스

 

1968년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계속하였고 70년대 말에는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수상도 합니다.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니 1977년 미국 영화 협회에서 공로상도 받는 등 말년에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배우로서 최고의 인생을 살다 1989년 10월 6일 프랑스에서 81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것도 스페인의 영화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하니 평생 영화배우로 헌신한 일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 네 번의 결혼을 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많은 친구를 사귀었으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 베티는 항상 바쁘고 항상 친구가 있었기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성격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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