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다 바라는 1900~1910년대 무성 영화 시대 최고 섹시한 여배우이다.
1890년 7월 29일 신시내티에서 태어나고 오하이오주에서 자란 유대인 테다 바라(theda bara)의 본명은 테오도시아 굿맨(theodosia goodman)이다. 그녀는 18살 뉴욕으로 와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았다.
무명의 배우로 소일하던 그녀는 1915년 프랭크 파웰 감독의 ‘a fool there was’ 무대에 열연하면서 단 하룻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소위 젠틀한 남자를 유혹하면서 감각적이고 잔인한 요부 역할로 헐리우드 섹스 심볼 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녀의 나이 서른 살 때 일이다.
1917년 무성영화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영화사는 그녀의 홍보를 위해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은 테다 바라의 출신을 바꿔야 했다. 그러니까 테다바라는 피라미드와 연관이 있는 아랍 혈통의 프랑스인이었고 프랑스 교육을 받았다는 식의…실제 테다 바라는 프랑스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당시는 스타 파워를 위해 그런 일이 비일비재 했었다. 여기에 더 나아가 그녀를 프랑스 여배우와 이탈리아 조각가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소개되기도…
그것이 그녀의 스타로서 주가를 높이는 데 큰 일조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 후 5년 동안 약 40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대체로 비슷한 캐릭터인,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요부 역할만 맡아 했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영화는 비평가로부터 천박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다바라는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스타였다.
요부 캐릭터를 최초로 심어준 테다 바라의 이미지는 마치 마돈나가 벤치 마킹이라도 한 듯
노출이 심하고 니플을 강조한 옷을 입고, 몸매를 드러내고 눈화장을 매우 짙게, 그러니까 해비 스모키 화장으로 유명하다. 가는 일자 눈썹도 그녀를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
정말 말도 안 되게 노출이 심한 테다 바라 스타일의 의상은 30년대 이후로 사라졌는데 영화가 대중에게 부적절한 요소를 비춘다는 이유로 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를 사악하고, 죄 많고, 악마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며 영화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당시 그녀의 인기가 엄청나서 딸 이름부터 식료품, 그녀를 위한 노래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규제에 나선 것.
테다 바라는 자신의 음성이 나오는 유성 영화는 절대 출연하지 않았고 1926년 45분짜리 단편 영화를 끝으로 은퇴한다.
그녀에게는 수많은 남성 팬들이 그녀에게 구애했지만 테다 바라는 1921년 미국인 감독 찰스 브래빈과 결혼했고 둘 사이 아이는 없었다.
1955년 테다 바라는 위암으로 4월 7일에 세상을 떠났다.
1937년 폭스사에서 화재가 난 이후 거의 모든 필름이 파괴되고 테다 바라를 스타로 만들어 준 ’A fool there was’ 한 편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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