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고전이라 불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서양 최초의 문학이며 필멸의 인간을 다룬 서사시이다. 막연하게 최고의 고전, 반드시 읽어야 할 서양 필독서 리스트에 올라와 있으니까 읽기는 했다만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다시 되짚어 보았다. 사실 영화에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일리아스에 관한 정보는 많이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고전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가에 관한 거다.
작가 호메로스에 관하여
작가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인물로 추정되며 생몰년을 알 수 없어서 실존 인물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그리스 암흑 말기에 활동했던 유랑시인이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고 하였는 데 그 또한 매우 극적인 것으로 보아 정말로 가상의 인물인 걸까. 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줄거리도 아니다. 줄거리야 뻔하다. 전쟁 중 펼쳐진 영웅들의 장엄한 이야기다. 거기에 여자, 특히 미인이 끼어 있고 신파가 섞여있다. 미녀 쟁취, 전우애, 부성 및 모성애가 짬뽕으로 섞여 있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일리아스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지는 인본주의에 입각한 소통을 다룬 서사시가 포인트이다. 그것도 아주 원초적인 인간들의 내면을 다루었기 때문에 신들의 조언 및 개입이 수반된다. 이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아이를 지켜 보는 엄마의 마음이라고 해둘까? 중요한 건 서양의 세계관은 신들의 존재가 불멸하되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어떻게 신들이 그럴 수 있지? 그런 차이를 알고 읽으면 매우 흥미롭다. 물론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신들이 아니지만 사건의 발단과 중요한 사건마다 신들이 개입하고 자기들끼리 두둔하는 인간들도 따로 있다. 여기서도 서양 철학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점이, 서양은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거다. 심성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모든 면에서 출중하면 신들은 더 예뻐한다. 신은 철저하게 인간의 혈통을 따지며 불공평하고 질투와 탐욕 또한 넘친다. 불멸하는 것 말고는 그냥 욕심 많은 틀딱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전지전능한 신이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는 게 서양 철학의 특징이고 그것이 인간 중심 세계관을 만드는 데 일조한 걸까. 아니면 그럴려고 신을 평가절하한 큰 그림이었던 걸까.
어쨌거나 인본주의에 입각한 서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호메로스의 뛰어난 통찰로 바뀌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이야기는 급작스러운 반전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선택한다. 그러니까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신은 아직도 영향력이 대단하고 인간은 미숙하다. 게다가 일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인지 온전하게 인간들 세상에 놓이게 두지 않고 반신반인을 툭 던져 놓는다.
일리아스 이야기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10년 중 막마지 51일간의 기록을 다룬 이야기이다. 첫 장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다.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여왕 헬레나를 빼앗아 전쟁이 시작되었고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분노를.
그것은 아카이아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주었으며
영웅들의 수많은 굳센 혼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인간의 왕인 아트레우스의 아들과 고귀한 아킬레우스가 처음에 서로 다투고 갈라선 그때부터 노래하소서."
위의 문장이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한 일리아스 첫 장이다. 대체 그가 왜 분노한 것일까. 일종의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필멸의 인간을 다룬 이야기
일리아스는 불멸이 아닌 필멸의 인간, 그것도 영웅을 다룬 이야기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치열하게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서양 세계관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것이 서양에서 희극보다 비극이 추앙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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