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이고 재치와 부드러움과 인간성 넘치는 배우 머나 로이는 1905년 몬태나주 헬레나주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가족은 영국 상류층으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이름을 머나로 지은 까닭은 아버지가 철도역 이름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몬태나주 최연소 의원이 된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어서 딸에게 정치적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철도역 이름을 지어준 거라고 한다. 영국에게 기차는 각별한 의미가 있으니까.
머나 로이는 13살 아버지가 감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몬태나에서 자랐다.
홀로된 머나 로이 엄마는 자식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머나 로이는 연기에 매료되고 15살에 지역 극장 무대에 선다. 거기서 만난 훗날 유명해진 배우 조안 크로포드와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다.
어느날 무대에 선 머나 로이를 루돌프 발렌티노가 인상적으로 보았고 그를 계기로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까지 이어진다.
머나 로이는 로이 파웰과 14편의 영화를 찍고 1930년대에는 내내 클라크 게이블과 파트너가 되어 영화를 찍었다.
1936년 앙케이트 조사에서는 머나 로이와 클라크 게이블이 헐리우드의 퀸과 킹으로 추대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활발한 활동을 한 머나 로이지만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그 기간 동안 영화를 찍지 않았다. 대신 루스벨트를 위한 켐페인에 집중했다. 선거운동을 통해 영부인 엘리너 루즈벨트와 좋은 친구가 되었다.
피는 속일 수가 없던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로이는 정치적 명분에 집중하였는데, 한 인터뷰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과격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성기 시절 그녀는 과장된 일체의 것들을 싫어했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했지만 강렬하면서도 조용한 여성스러움을 풍기는 멋진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관능이 외면에 표출되지 않고 지성으로 가득해 깊고 그윽한 매력이 넘치는 배우였다.
머나 로이는 뉴욕에서 여생을 살았고 1993년 12월 18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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