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매디슨 스퀘어 살인 사건’. 그 중심에 있었던 여성, 에블린 네스빗은 미국 최초의 핀업걸이자,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자였다. 이 글은 그녀의 삶과, 아름다움이 낳은 저주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 스폰서 링크
1. 매디슨 스퀘어, 총성과 함께 무너진 이상
1906년 6월 25일 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옥상극장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무대 공연 중이던 이 극장은 순식간에 살인 현장이 되었다. 건축가 스탠포드 화이트를 쏘아 죽인 인물은 억만장자 해리 켄달 쏘. 그는 외쳤다.
“당신이 내 아내를 망쳤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아내’는 바로 에블린 네스빗.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고, 언론은 곧 그녀에게 죄를 물었다.
📢 스폰서 링크
2. 미국 최초의 핀업걸이 되다
1884년 크리스마스,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에블린 네스빗은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다. 11세에 아버지를 잃고, 14세에 어머니와 함께 생계를 책임지며 고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를 바꾼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한 화가의 눈에 띄어 모델 일을 시작한 그녀는 곧 뉴욕으로 무대를 옮겼고, 그곳에서 당대 최고의 모델로 떠오른다.
‘깁슨걸’이라는 새로운 미의 아이콘이자 미국 최초의 핀업걸. 그녀는 완벽한 이상형의 얼굴로 광고와 잡지를 장식하며 수많은 미국 남성의 ‘꿈’이 되었다.
3. 보호자인가, 포식자인가: 스탠포드 화이트의 그림자
그녀의 인생에 ‘구원자’처럼 등장한 이는 건축가 스탠포드 화이트였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설계자이자 당대 최고 권력자 중 한 명. 그는 에블린 가족에게 아파트를 제공하고, 동생 교육까지 지원했다.
하지만 보호자의 얼굴 아래 감춰진 것은 폭력이었다. 어머니가 여행 간 사이, 화이트는 당시 14세였던 에블린을 범했다. 이 비극은 결코 공론화될 수 없었다. 가난한 소녀가 권력자를 고발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향력은 에블린이 사랑을 시작하려 할 때도 여전했다. 배우 존 배리모어와의 관계를 화이트는 집요하게 방해했고, 결국 에블린은 진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4. 선택의 여지 없는 결혼, 그리고 광기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억만장자 해리 켄달 쏘였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여성의 정조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 에블린이 과거를 고백하자, 그는 그녀를 오스트리아의 성에 감금해 2주간 폭행했다. 이후에도 에블린은 생존과 안정만을 이유로 그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감옥이었다.
📢 스폰서 링크
5. 살인극 이후, 희생자는 왜 비난받았는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공연장에서 마주친 화이트에게 쏘는 세 발의 총을 쏘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인자보다 에블린을 주목했고, 비난했다.
쏘의 어머니는 대규모 자금을 언론과 변호사에게 퍼부으며, 에블린을 ‘팜 파탈’로 만들었다. 대중은 그녀를 욕망의 화신, 남성을 파멸시키는 존재로 낙인찍었다. 쏘는 정신이상을 이유로 고급 병원에서 편안한 수용 생활을 했다. 이후에도 10대 소년을 학대한 죄로 다시 수감되었지만, 사회는 그를 두 번 용서했다.
6. 아메리칸 이브, 혹은 살아남은 피해자
1910년, 에블린은 아들 러셀을 낳았다. 쏘의 아들이라는 주장과 배리모어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엇갈렸다. 그녀는 이후 댄서 잭 클리포드와 재혼했지만, 여론은 그녀를 또다시 내팽개쳤다.
‘아메리칸 이브’, ‘플레이보이 킬러’라는 별명은 그녀를 여성의 악마적 본능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폭력에 시달리며 생존한 여성이었을 뿐이다. 쏘는 생전에 에블린을 감시했고, 자살 시도를 막기도 했다. 그는 죽기 직전, 에블린에게 1만 달러의 유산을 남겼다. 애정이 아닌 지배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에블린은 평생을 그림을 그리며 지냈고, 1967년 82세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쳤다.
📢 스폰서 링크
아름다움은 축복이 아니었다
에블린 네스빗은 ‘아름다움’ 때문에 선택받은 듯 보였지만, 실상은 선택권 없는 삶을 견뎌야 했던 피해자였다. 남성의 욕망, 권력의 폭력, 언론의 왜곡이 그녀를 파괴했고, 그 책임은 끝내 누구도 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붙여진 수많은 별명들은 본질을 가렸다. 진짜 킬러는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했던 남성들이었고, 그들을 비호한 사회 시스템이었다.
🔗 이 글도 함께 읽어보세요
'color story > 뷰티 앤 패션 노하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조적인 성향의 30년대 배우 머나 로이 뷰티 스토리 (0) | 2021.05.23 |
---|---|
고대 동양 미인의 조건 (0) | 2021.05.21 |
마릴린 먼로를 자극했던 60년대 핀업 걸 제인 맨스필드 스토리 (0) | 2021.05.20 |
1930년대 가장 사악했던 패션 아이콘 데이지 펠로우 뷰티 스토리 (0) | 2021.05.19 |
1920년대 찰리 채플린의 비밀 연인이자 미디어 제왕 허스트의 애첩 마리온 데이비스 (0) | 2021.05.18 |
2021 양말의 시대가 왔다 (0) | 2021.05.17 |
2021 새롭게 뜨고있는 웨딩 드레스 트렌드 (1) | 2021.05.16 |
입술 화장의 컬러별 이미지 (0) | 2021.05.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