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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ies(인문학)132

고려의 불교 정책 태조 왕건은 승록사 설치(불교 관련 업무 맡은 기관), 비보사찰 건립(훈요 10조와 관련). 훈요 10조에서 불교와 관련된 게 2개. 연등회와 팔관회 성대하게 개최하라, 개경 주변에 사찰을 많이 건립하라 도성이 전한 자리에...(풍수지리 관련) 그래서 10개 건립되는데 비보사찰. 고려시대 불교 키워드 4대 광종은 승과 제도, 왕사.국사 제도를 둠 이는 고매한 승려를 왕사(왕실일 자문) 국사 임명은 (나라 일에 관여) 균여에게 시켜 귀법사 창건, 사원에 토지와 노비 지급하고 각종 면세 혜택. 4대 광종 때 등장하는 승려가 균여와 혜거 균여는 보살의 실천에 힘썼다. 교종 쪽, 화엄종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는 임무. 혜거에게는 법안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도록 시킴. 팔관회: 순수한 불교행사가 아닌 토착신앙.. 2021. 8. 29.
한국사 고려의 신분제도 고려 신분제도: 고려도 큰 뼈대는 양천제. 귀족: 왕족, 5품 이상의 고위 관료(음서, 공음전 혜택) 중류층: 구성: 남반, 군반, 잡류, 향리, 역리 등 남반은 궁중 잡역, 군반은 하급 장교나 중앙 군인(군인전 지급, 사회적 지위 비교적 높음), 이들은 직역을 대대로 세습, 그 대가로 토지 수급(군인전, 외역전 등이 대표적) 호족 출신 향리: 지방의 실질적 지배층(호장층 형성) 6대 성종 때 향리제도 마련, 향리는 9등급으로 구별. 제일 위가 호장 그 밑이 부호장, 맨 마지막 9번째가 후단사. 호장에서 후단사까지 향리를 9등급으로 나눠 향리제도를 마련한 건 6대 성종, 호장과 부호장은 향리 중에서도 나머지 향리들과 구별되는 상층 향리고 이들이 호장층을 형성함. 상층향리의 유래는 신라말 고려초의 호족. .. 2021. 8. 28.
한국사 고려의 교육기관 고려는 주요 군현에 향교가 있었음. 고려의 국자감은 유학부가 있고 기술학부가 있다. 유학부는 국자학, 태학, 사문학으로 나누고 기술학부는 율학, 서학, 산학으로 나눔. 고려시대 교육기관 특징 고려의 국자감은 유학 교육 중심이었다. 국자감은 신분에 따라 입학 자격을 따로 둠. 국자학 아버지 3품, 태학 5품 사문학은 7품 이상의 관리 자제들이 입학을 허락받음. 기술학부는 하급관리 자제나 평민들이 주로 입학. 이들을 경사 6학. 최충이 퇴직후 9재학당 설립 이것을 따서 사학12도가 번성. 그러자 관학인 국학이 위축되어 국자감을 진흥하기 위한 조치들이 나옴. 예종은 국자감 안에 7재(과거전문강좌), 양현고란 장학재단. 인종 때 경사 6학 정비, 향교 증설. 충렬왕은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 문묘(공자사당)설.. 2021. 8. 27.
한국사 고려 시대 경제 활동 전반 훑어보기 고려의 수취제도: 고려는 논과 밭(논은 수전, 밭은 한전) 논과 밭의 비옥한 정도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토지세를 거둠. 과세는 생산량의 10분의 1. 공물(공납)-호 단위로 토산물 징수, 나라에서 필요한 공물을 종류와 액수를 주어 주현에 부과(주현공부법), 별공과 상공 역-16세에서 60세까지 양인 남자가 군역과 요역의 의무. 노동력 징발은 인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집집마다 9등호로 나눔. 문종이 시행한 재면법은 재해를 입으면 조세를 일정 부분 깎아주는 제도. 개간한 땅에 대해서 조세나 소작료 일정 기간 면제- 사전(1년 면제, 1/2), 공전(3년 면제, 1/4) 재정 담당 관청-호부와 삼사 호부(호적과 양안 작성 관리), 삼사(회계 담당) 송나라 삼사는 재정을 총괄하는 관서지만 고려의 삼사는 화폐.. 2021. 8. 27.
고려 왕조의 멸망 과정 고려 왕조의 멸망 명의 철령위 요구, 명이 원을 쫓아냄. 명이 고려의 친원적인 태도를 문제삼아 철령이북의 땅을 직할령으로 삼겠다고함. 고려 최고 권력자 최영 주도로 요동 정벌 추진. 이성계와 사대부는 4가지 이유로 반대. 그럼에도 출정을 하게 됨. 우왕과 최영 장군은 평양에 남고 출병은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우군도통사 이성계가 하기로 함. 그러나 폭우가 계속되자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최영 제거하고 우왕 끌어내고 창왕 올렸다가 폐가 입진. 그러나 우왕과 창왕은 신돈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창왕마저 폐위. 그리고 먼 왕손 왕료를 데려다 세우는 데 그가 공양왕임. 삼군도총제부-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일파가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지휘부, 이게 나중 조선초에 의흥 삼군부로 계승됨. 이성계와 혁명파 사대부는 대규모 전제.. 2021. 8. 26.
고려 12세기 초 원간섭기 이야기 여진은 유력한 부족으로 흩어져 있음. 여진은 기마민족, 고려 국경 약탈을 일삼았다. 반면고려는 보병부대. 윤관 장군이 숙종 때 별무반 17만명을 조직한다. 별무반은 신보군(새롭게 편성한다)과 신기군(새롭게 편성한다 기병), 항마군(승려군외 떨거지)이들을 통칭해서 별무반이라 하였다. 숙종 때 1107년 윤관 장군이 별무반 조직해서 오늘날 함경도 일대에서 여진 정벌함. 여진족 통합 후 금나라 세움 윤관이 9성을 쌓은 것은 예종 때 척준경이 부하 10여명과 적장 사살등 엄청난 성과를 일으킨다. 그리고 동북 9성을 쌓았다. 그러나 관리를 제대로 못해 1년 만에 돌려준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아 여진족이 통합된다. 아골타란 영웅이 등장하고 금나라를 세운다. 1115년 금나라.(완안부 여진) 거란이 세운 나.. 2021. 8. 24.
고려와 거란과의 관계 서희의 외교 담판 고려의 4대 광종때 송나라가 등장하자 고려는 친송정책으로 전환함. 고구려 계승인식을 내세워 옛 고구려 땅 찾으려고 북진 정책 강행. 그리고 요(거란)을 배척하는 태도를 취함. 고려는 송의 앞선 문화, 경제 문화는 적극적, 송과 군사적으로 동맹을 맺진 않음. 고려 초기의 기본적 외교는 친송, 북진정책, 거란 배척. 이것이 고려가 거란의 침입을 받게 된 배경. 거란 1차 침입:993년 발해의 계승국가 정안국이 골칫거리니가 거란이 멸망시키면서 그길로 고려 역내로 침공, 그래서 안융진까지 침범. 고려 조정에서는 두 파로 갈라짐. 항전파와 화친파. 대다수가 화친파. 화친파는 서경 이북의 땅을 떼주고 화친하자고 함. 그러자 서희가 싸워보고 안 되면 타협을 모색하자고 함. 그랬더니 니가 가라 함. 서희가 중군사가 되.. 2021. 8. 23.
한국사 고려 후기 무신집권기 이야기 무신정변의 원인은 12세기 문을 추앙하고 무를 무시하는게 심했던 듯. 김부식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태웠다는게 무신정변의 직접적인 발단이라고 한다. 고려 후기 무신정변의 원인 춘천의 보현원으로 나들이를 가는데 격구 시합에서 나이 많은 무신이 희롱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여기다 당시 국왕과 귀족의 사치 향락 생활, 의종의 향락정치. 군인들의 경제적 기반이던 군인전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면서 군인들 불만이 폭발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드디어 1170년 춘천에 있는 보현원에서 무인들이 정변을 일으킨다. 이의방이 등장. 이의방은 임금의 경호원들을 결룡이라고 함. 이의방은 결룡행수. 요즘으로 청와대 경호원 책임자. 정중부는 용호군 상장군. 정중부는 고위 장군이었고 이의방은 임금의 경호 책임자가 연합해서 ..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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