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미국의 예술가들을 열광케한, 무모하면서도 최고로 사랑스럽고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에블린 네스빗의 이야기다.
에블린 네스빗은 지금봐도 놀라울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이다. 1884년 12월 25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14세 때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고의 배우이자 모델, 코러스 걸로 활약한 미국 최고의 깁슨 걸이었다. 게다가 20살 때는 천만장자 해리 켄달 쏘와 결혼하였다.
최고의 미모로 태어난 미녀에게 앞 날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 그녀의 남편에 의해 뉴욕 사교계 명사인 스탠포드 화이트가 살해된 후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화이트를 만난 이후부터 였는지도 모르겠다. 사건은 1906년 6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 극장 옥상에서 일어났고 세기의 재판으로 이어진다.
대체 왜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백만장자 쏘가 화이트를 살해한 걸까?
그는 화이트가 네스빗의 데뷔 초였던 14살 때 그녀를 강간했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에블린은 11살 어린 나이에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엄마가 에블린 남매를 부양하게 되었다. 에블린 엄마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부딪혀야 했다. 에블린 엄마는 친척 집에 얹혀 살면서 아이들은 그곳에 남겨두고 자신은 재봉사로 일하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떠났다.
재봉사 일은 못 구한 대신 그곳 백화점의 직물 카운터에서 판매원으로 고용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에블린의 엄마는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 두 아이들은 엄마를 도와 일을 하였고 당시 에블린의 나이 14세, 남동생의 나이 12살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었음에도 그들은 매일 12시간 일주일에 6일 동안이나 일했다.
그러다 운명적 순간이 생겼다. 지나가던 한 화가가 에블린의 매력적인 외모에 감탄하여 요즘 시세로 약 3만원 가량의 돈을 받고 모델이 되어준다. 이로써 에블린은 돈을 벌 수 있는 보다 쉽고 재밌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예술가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래서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델 활동을 시작한다.
에블린은 뉴욕으로 옮겼고 에블린 가족의 가난과 절박함은 에블린에게 보다 험난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블린에게는 세 명의 재정적 후원자가 생겼고 에블린은 그들의 요청대로 많은 예술가들의 모델로 보내졌다. 그리고 당대 가장 바람직하고 감탄이 나올 만한 모델이 되어줬다.
여기서 모델이라 함은 그림 속 주인공도 되고 사진 속 주인공도 해당한다. 그녀는 코스모 폴리탄을 비롯한 하퍼스 바자, 베니티 페어 등 여성 잡지 표지의 가장 인기있는 얼굴이 되었고 잡지 속에선 치약부터, 크림, 담배 카드, 엽서, 맥주 쟁반 할 것 없이 어디에나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한 회사의 달력을 위해 포즈를 취한 후 최초의 핀업 걸이란 타이틀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돈도 벌고 재밌으니 좋았겠지만 에블린은 바쁜 스케쥴과 오랜 포즈를 취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엄마는 그녀에게 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일대신 동적인 연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얼마 후 에블린은 코러스 라인의 일원으로 역할을 맡다 곧 브로드웨이의 와일드 로즈 역을 따냈다. 그녀에게 연기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만 보았고 아름다움에 관해서 칭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무렵 스탠포드 화이트와 엮이게 된다. 47세의 스탠포드 화이트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과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설계한 당시 가장 유명한 건축가였다.
화이트는 허풍스럽고 개방스러운데다 약탈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존 엡스타인처럼 어린 소녀들만 취하는 포식적인 성욕자로 언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어린 소녀들이 그의 부와 힘에 매료되어 그에게 잘보이려고 줄을 섰다. 그런 그의 눈에 에블린이 들어왔다.
물론 에블린의 엄마는 화이트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알았을 거다.
그는 에블린 가족에게 좋은 아파트를 제공하고 남동생이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에블린을 재정적으로 도운 대신 항상 에블린 주위에 있었다. 보호자 역할을 자청했으나 속내는 보호자가 아닌 흑심이었다.
하루는 에블린 엄마가 피츠버그로 여행을 간 사이 그는 에블린을 그의 집에 저녁 먹으러 오라며 초대하였다. 집에는 화이트 또래의 늙은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샴페인에 취해 쓰러진 에블린이 잠에 깬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반나체로 화이트 옆에서 일어났다. 다리 사이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당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화이트는 그녀의 보호자 역할을 계속했다.
에블린이 17살때 훗날 최고의 배우가 되는 존 배리모어를 만났다. 그는 처음에 배우 대신 삽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그것으로는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그것은 어린 시절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한 에블린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하고도 남았다. 그와중에 화이트는 둘 사이를 떼어놓게 하려고 에블린을 기숙학교에 등록하도록 조언했다. 배리모어는 화이트 앞에서 그녀에게 청혼했음에도 그녀는 거절했다.
배리모어뿐만 아니라 에블린에게 관심있는 남자들은 숱하게 많았다. 에블린에게는 남성의 제 1조건이 경제적 여유였다. 나름 부와 명성 그리고 매력이 넘치는 남성들의 대시에도 그녀가 택한 남자는 백만 장자 해스였다. 그는 살 수 없는 물건이 없을 만큼 돈이 많았지만 누가봐도 불안정하고 이상한 사람이었다. 함께 유럽 여행 중 그녀의 엄마는 그에게 질려 딸을 내버려두고 홀로 뉴욕으로 돌아갈 정도였다.
에블린과 쏘는 파리로 갔는데, 파리에 머문 동안 그는 에블린에게 결혼하자고 집요하게 요청했다. 여성의 정조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결혼을 동의하지 못한 에블린은 화이트가 자신에게 한 짓을 털어놓았다. 쏘는 완전히 격분하였고 에블린을 오스트리아의 한 성으로 데려가 2주동안 채찍으로 그녀를 때리고 성폭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블린은 그와 결혼하면 재정적인 안정을 보장받는다는 생각에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결혼한다. 결혼을 허락하는데는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쏘의 엄마는 에블린이 일을 그만두는 조건하에 동의하였다. 에블린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에블린은 한국식 시집살이를 하게 되는데 독실한 쏘의 엄마는 집안의 모든 행동과 규범을 엄격하게 정했다. 그런 사이 에블린의 엄마는 재혼하여 딸과는 완전히 사이가 멀어졌다.
6월 25일 유럽 여행을 하루 앞두고 뉴욕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 에블린과 쏘는 저녁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 극장 옥상에서 공연하는 티켓을 구입했다. 그날 밤 공연을 보러 온 화이트 일행과 마주쳤지만 쏘는 침착해 보였다. 그리고 밤 11시쯤 쇼가 끝나갈 무렵 쏘는 코트에서 권총을 꺼내 화이트의 머리와 등을 세 차례 저격했다.
쏘는 당신이 내 아내를 망쳤다. 당신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소리쳤다.
쏘는 감옥에 갇히고 사람들은 에블린을 비난했다. 쏘의 엄마는 아들의 미친 광기에 면죄부를 내릴 의사와 변호사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리하여 돈으로 고급 아파트에 수용된 병원에 머물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7년 후에 그는 석방되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10대 소년을 채찍질한 죄로 다시 감방에 들어갔다.
1910년 에블린은 베를린에서 아들 러셀 윌리엄 쏘를 낳았다. 아이가 쏘를 방문한 동안 임신한 아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쏘는 친자임을 부인했다. 그들은 1915년에 이혼했고 쏘는 에블린에게 겨우 1만 달러를 위자료로 지급했다.
에블린은 1916년에 댄서 잭 클리퍼드와 재혼했다. 그들은 무대에서 함께 일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대중은 그녀에게 치명적인 미인을 인정하면서(lethal beauty) 플레이보이 킬러라고 비난하였다. 대중은 그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918년 지친 잭은 에블린 곁을 떠났다.
1926년 에블린은 물랑루즈 카페에서 댄서로서의 직업마저 잃은 후 살균제를 삼키며 자살을 시도했다. 그때까지 쏘는 전처에게 미행을 붙이고 있었기에 회생이 빨랐다. 그는 시카고의 병원에 입원해있는 그녀를 방문했지만 소문과 달리 이 커플은 재결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1933년 에블린은 잭과의 이혼 서류에 서명하였다.
1947년 쏘는 마이애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에블린은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하여 화가가 되었고 1967년 82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주 산타 모니카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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